[ 독재자 ] - 시진핑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독재자 시진핑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자 독재자.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이 되었다. 제6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군 통수권자) 겸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이며 역대 중국 최고지도자들 중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 태어난 인물이기도 하다.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중국 헌법에 명시된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 조항을 삭제하여 종신집권의 야욕을 드러냈으며[11] 2021년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를 통해 종신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2022년 10월 22일 중국공산당 제20차 당대회 폐막에서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시진핑은 후진타오 시대까지 유지되었던 2연임 초과 금지 원칙을 깨고 사실상 영구집권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스스로의 위상을 공식적으로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동일한 반열에 올렸다.
시진핑은 2022년 20차 당대회에서 대만 무력 침공과 양안 통일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는데, CIA는 영구집권을 정당화할 치적이 없는 이르면 2022년 연말에라도 대만 침공 가능성이 있고 시진핑이 본인의 3연임이 끝나는 2027년 이내에 분석했다, [12]
[2] 생애
1953년 6월 15일, 베이징에서 혁명 원로로 부총리였던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섬서성의 토착 공산주의자로 류즈단(劉志丹, 1903. 10. 4. - 1936. 4. 14.)[13]과 함께 해방구를 건설했다. 이후 중국 최남단에 있던 장시 소비에트가 국민당군이 철저히 준비하여 추진한 제5차 초공작전으로 삽시간에 붕괴하면서 공산당 지도부가 대장정을 거쳐 섬서성으로 피신해 오자, 시중쉰은 혁명의 새로운 근거지를 건설했다는 공로로 일약 당 고위직에 진입한다.
시중쉰은 동료 공산당원 하오밍주(郝明珠)와 결혼했다가 1남 2녀를 낳았다. 1943년 이혼 후 1944년 치신(齐心, 제심)과 재혼했다. 시중쉰은 치신과 2남 2녀를 두는데, 시진핑은 그중 셋째이다. 즉, 총 3남 4녀 중에서 6번째 자녀인 셈.
1962년 소설 류즈단 필화 사건[14]에서 시중쉰이 펑더화이파[15]로 몰려 반당(反黨) 집단의 낙인이 찍혀 오지로 귀양갔고, 당시 16살이었던 시진핑도 아버지를 따라 산시 성 시골로 하방(추방)되어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3] 집권
시진핑의 집권은 이전 주석들인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미묘한 권력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날 상하이방의 장쩌민이 공청단의 후진타오에게 정권을 양도한 것은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었다. 덩샤오핑이 생전에 장쩌민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되 후진타오를 장쩌민의 후계자로 하는 조건으로 정권을 인수인계 해줬기 때문이었다. 이에 장쩌민은 정권 자체는 후진타오에게 인계해 주었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들은 대부분 상하이방으로 채우는 꼼수를 썼고 결국, 후진타오를 반쪽 짜리 주석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 성공했다. 4세대 지도부가 출범할 때 지도부 9명 중 6명이 전부 상하이방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까지 독재자 시진핑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