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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야구선수 ] - 최동원

지식백과사전님 2022. 10. 21. 20:42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전 야구선수 최동원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인. 현역 시절 선동열과 함께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한 양대산맥으로 손꼽히는 투수이자 롯데 자이언츠를 상징하는 선수로 야구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사후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영구결번을 받았다. 더 놀라운 건, 아마 시절에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14] 혹사에 시달린 후 프로에 데뷔했음에도 프로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의 투구 폼은 용틀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역동적이었으며, 자기 공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투구를 했다. 그것은 일본의 선진 야구를 배우게 한 아버지의 덕이 컸었다.[15] 부산에서 시청 가능하던 일본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의 투구폼을 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최동원의 전매특허인 드롭[16]이 바로 호리우치의 주무기였다.

공격적인 투구 성향으로 피홈런율이 상당히 높았다.[17] 더불어 통산 고의사구가 15개밖에 안 된다. 1년에 2개도 안 던진 셈. 정말로 공격적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2] 플레이스타일
주 구종은 최고 154km/h까지 나오는 패스트볼과 커브였는데, 특히 커브는 선동열의 슬라이더와 함께 KBO 역대 최고의 마구라고 평가받는다.[20] 최고 150km/h 초반대의 패스트볼과 빠른 커브, 그리고 완벽히 타이밍을 뺏기 위한 느리고 폭이 큰 커브 등을 무기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게다가 저런 커브볼 자체가 한국프로야구에서도 흔하질 않았기에, 어떻게 보면 최동원은 메이저리그로 따지자면, 커브볼이라는 구종을 도입한 모데카이 브라운이었다. 그 뒤로 정민철, 김상엽 등이 등장했으니..

최동원의 최고구속은 신명철 기자가 최동원과 최윤식씨를(최동원의 아버지를) 직접 취재해서 확인한 바, 1981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측의 스카우터 웨인 모건이 측정한 96마일(154km), 하지만 최동원이 현역에서 은퇴한 후, 일요일 일요일밤에 출연해서 자신의 최고구속은 156km라고 말했으며 이후 또 다른 방송에 출연, 손석희와 인터뷰를 할 때는 157km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 1978년 이탈리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방송 중계 중에 측정이 되어 신문에 난 것을 지인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980년대 당시 기사에는 157km가 아닌 153km로 되어 있었다. 또한, 1981년 당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는 최동원의 구속을 메이저리그 평균 수준으로 평가했었는데, 당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0km에 미치지 못 하는 수준, 평균 138km전후였다



[3] 여담
최동원의 부친 최윤식 씨는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한쪽 다리에 부상을 입은 상이용사였고 모친 김정자 여사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26] 특히 최윤식 씨는 생전 최동원의 실질적 에이전트를 자처하며[27]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늘 따라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연봉 협상 때도 롯데 프런트와 만나 협상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1988년 초 연봉 협상 과정에서는 박종환 당시 롯데 전무와 갈등을 일으킨 적도 있다. 최동원 90만원 사건 참조. 김정자 여사는 교사 경력을 살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 강좌 등에도 나선다고 전해지며 후술하는 것처럼 아들의 동상을 자주 찾고 있다.
롯데의 계약금 미지급으로 시작된 최동원과 롯데의 갈등 역사는 연봉 협상 및 지급을 둘러싼 갈등, 선수협 창설 과정에서 보복성 트레이드 단행 등으로 뿌리가 깊다.


지금까지 전 야구선수 최동원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