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투선수 ] - 플로이드 메이웨더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권투선수 ' 메이웨더 ' 에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신의 경지에 달한 스피드와 테크닉, 방어술을 지녔다고 평가받으며, 사상 최초로 무패로 5체급을 정복하고 50승 0무 0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자랑하는 21세기 최고 복싱 슈퍼스타이자 복싱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다
[2] 상세
후안 마누엘 마르케즈, 리키 해튼, 오스카 델라 호야, 셰인 모슬리 등 당대의 강자들을 모두 꺾으며 1998년과 2007년 복싱 매거진 'The Ring' 선정 올해의 파이터로 선정되었다. 2008년 은퇴했으나 2009년 다시 복귀하여 무패 기록으로 은퇴했는데, 특히 2015년엔 매니 파퀴아오와의 드림매치의 승자가 됨으로써 21세기 중량급(中量級) 최고의 복서로 등극했다. 2015년 9월에 마지막 경기를 치른 뒤 은퇴했으며[15] 마지막 활동 체급은 웰터급, 슈퍼웰터급 세계챔피언이었다. 현재에는 복싱통계사이트 복스렉이 발표한 프로복싱 P4P 랭킹 현재기준 올타임 1위[16][17][18]가 되는 기염을 토하였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아버지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도 웰터급에서 활약했지만 챔피언급은 아닌 복서였고[19], 삼촌 로저 메이웨더[20]는 IBF 웰터급 챔피언을 지냈으며 전설적인 수비왕 퍼넬 휘태커에게 다운을 뽑아낸 적이 있는 뛰어난 복서였지만 동체급의 전설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에는 미치지 못한 2인자급이었다. 또다른 삼촌 제프 메이웨더 역시 IBO 슈퍼페더급 챔피언 출신이었지만 당대를 호령할 수준의 복서는 아니었다. 이렇게 메이웨더 가문은 복싱 명문이긴 해도 항상 최고가 되기엔 한끗발 모자란 선수들이었으나 메이웨더 3형제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메이웨더 주니어의 대에 이르러선 마침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전세계 스포츠스타 자산순위를 낼 경우 상위랭크 안에 반드시 포함되며 경기 한 번의 대진료로 전세계 스포츠스타 소득 1위에 등극하는 엄청난 부자이다. 초롱초롱한 눈과 함께 항상 깨끗한 얼굴로 경기를 마친다하여 Pretty Boy라는 좋은 별명이 있었으나 돈을 너무 좋아하여 스스로 Money라는 별명으로 바꿨다. [21]
여러 논란도 있지만, 분명한건 마이크 타이슨, 오스카 델라 호야를 잇는 현 세대 최고이자 복싱 역사상 최대의 흥행기록을 세운 슈퍼스타였다. 그리고 적극적인 이슈메이킹과 SNS를 이용한 셀프 마케팅으로 복싱과 엔터테인먼트의 관계를 보다 노골적으로 앞세운,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복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선수
[3] 불우했던 유년시절
미 중북부 미시간에서 태어난 메이웨더 주니어는 5살 때부터 복싱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삼촌은 복서였으나 결코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고, 5평 남짓 방 하나짜리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집안에서 총기사고도 있었을 만큼 거친 집안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부업으로 마약상을 했고, 어머니는 마약중독자였다. 이모 중 한 명은 AIDS로 죽었다고. 이쯤 되면 대부분의 빈민가 흑인 청년들처럼 메이웨더도 막장인생을 살 뻔했으나, 아버지는 그 와중에서도 아들을 체육관에 데려가 계속 복서로서 훈련시켰다고 한다. [22]
그러나 16세에 아버지가 마약 문제로 3년 반을 복역하게 되면서 메이웨더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 기간에 그의 할머니가 매우 헌신하여 그를 학업과 복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때문인지 메이웨더는 할머니가 원하는 모든 걸 다 해준다고 한다. 처음 큰돈을 벌자마자 한 일도 할머니에게 큰 집을 사준 것이었다. 진정한 효도를 하셨네
사실 이 정도로 불행한 환경에 놓인 소년들이라면 대부분 나쁜 길로 빠지는 반면 메이웨더는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복싱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헌신했다
[4] 아마추어
아마추어 시절 별명은 기본기의 신.
1993년 만 16세의 나이로 아마추어 복싱계에 데뷔하였다. (당시 45kg이하급)
1993년에 펼쳐진 네셔널 골든 글러브 챔피언쉽에서 아마추어 복싱 라이트 플라이급인 106파운드(48kg)로 우승하고, 이듬해인 1994년에는 플라이급인 114파운드(51.7kg), 1996년에는 페더급인 125파운드(56kg)급으로 뛰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상대에 비해 뛰어난 방어로 별다른 상처없이 이기는 경우가 많아 pretty boy라는 별명을 이때 얻게 되었다.
[5] 은퇴와 복귀
2007년 12월 리키 해튼과의 WBC 웰터급 타이틀전을 10라운드 TKO로 승리하고 잠정은퇴했다가 2009년 하반기 복귀했다.
2009년 9월 후안 마누엘 마르케즈를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2010년 5월 셰인 모슬리를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잡았으며, 2011년 9월에는 빅토르 오티즈와의 경기에서 많은 논란을 빚은 4라운드 KO승을 거뒀다.[30][31]
2011년말 여자친구 폭행죄로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2년 5월 경기를 위해 감옥에 가는 시기를 연기 받았다.
그 뒤 2012년 5월 미구엘 코토와의 WBA 슈퍼웰터급 타이틀전에서 다시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으며, 이후 6월에 감옥에 갔고, 3개월을 다 살지 않고 2개월만 있다가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동년 9월 로버트 게레로와의 WBC 웰터급 타이틀전 또한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장식한 끝에 2013년 9월 中량급의 차세대 주자 사울 알바레즈와 WBC/WBA 슈퍼웰터급 타이틀전을 벌인다.
지금까지 권투선수 ' 플로이드 메이웨더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