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 - 강동원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배우 '강동원 ' 에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
수려한 외모, 작은 얼굴, 훤칠한 키, 그리고 112cm의 길게 뻗은 다리를 소유하고 있다. 기존의 미남 배우들인 장동건, 정우성, 고수와는 다른 곱상한 꽃미남상이며 2000년대 이래로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는 '예쁜 남자' 신드롬의 주역. 패션 모델 출신이며 무려 9~10등신에 달하는 비율을 가지고 있다. 한쪽 눈은 유쌍, 다른 쪽은 연한 속쌍꺼풀을 가지고 있다. 각각 풍기는 분위기가 다른 짝눈이 매력이자 연기적 장점이며 뾰족하고 높게 솟은 콧날이 마치 직각삼각형을 얹어놓은 것처럼 인상적이다.
전형적인 배우의 루트를 거치지 않았고 데뷔 초기에 보여준 다소 어색한 연기로 인해 배우로 인정받기 어려워 보였으나 배우로서의 목적 의식을 갖고 묵묵히 노력한 덕분인지[7] 이제는 대중들에게 연기력 또한 인정받아 가는 추세. 특히 꾸준한 작품 활동이 큰 인정을 받고있다. 일부 인기 영화배우들이 신비주의로 인해 대박 영화 한 두 편 찍고 나면 몇 년씩 쉬면서 CF만 찍는 반면[8], 강동원의 경우 매년 한 두편씩 꾸준히 영화를 찍고 다양한 배역을 맡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기에 그런 부분에서 평가가 높다. 추가로, 그는 한 매체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많이 찍기 위해 광고 촬영은 줄이려 한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광고로 인한 수입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연기할 때.[9]
필모그래피를 보면 출연작 속 캐릭터가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다.[10] 본인은 배역이 겹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 중 연달아 흥행한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매 작품이 개봉할 때마다 '강동원이 곧 장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맡은 배역은 다른 배우가 절대로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독보적인 연기적 존재감을 자랑한다. 캐릭터를 본인의 스타일대로 개성있게 살려내며 표정 연기 또한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특히, 액션 연기 분야에서 칭찬받은 적이 많다.[11] 본인도 액션에 있어서는 자신감을 드러낸다.[12]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강동원의 연기력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작품에서 맡은 캐릭터에 따라 평가가 다른데, 목소리는 괜찮으나 아무래도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에 사투리 억양이 신경쓰인다는 비판이 있다.[13] 그의 작품을 본 대중들의 반응이 연기보다는 주로 그의 얼굴과 피지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씁쓸한 사실 역시 존재한다.[14] 안정적인 길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강동원의 행보는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본인도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많다.[15]
영화계에서의 높은 입지와 타율이 괜찮은 필모그래피 및 스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에 비해서 수상 경력은 빈약한 편이다. 데뷔 초에 신인상과 인기상을 여러 개 받은 이후 2010년 제3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의형제》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본인은 상 받는 것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 또한, 아직 1,000만 관객을 모은 적이 없지만 강동원은 오롯이 혼자서 티켓 파워를 발휘하는 배우로 평가 받는다. 2016년 CGV리서치센터가 관객 1,01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관객들이 믿고 영화를 보게 만드는 배우 2위(28.2%)를 차지했다. 하지만 본인은 천만 배우 타이틀에 대해서도 아쉬운 것이 없고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다.[16]
2016년 인터뷰에서는 '향후 5년이 자신의 연기인생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했고 YG로 이적한 이유가 '열악한 영화 환경에 대한 싫증과 한국 영화의 세계화, 아시아 시장에 대한 겨냥' 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이 배우의 행보에 더 기대를 갖고 눈여겨 볼 만하다.
영화계에서는 '강동원은 이미 브랜드나 마찬가지다'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일단 강동원이 출연하면 못해도 본전은 뽑는다고 한다.
[2] 데뷔 전 모델시절
중학교 때는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굉장히 잘했었다.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면, 어릴 적 별명은 '오골계'였다고 한다. 출처 어렸을 적엔 지금처럼 잘생기지도 않았고,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서 까맣게 그을렸기에 그런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로 위의 졸업사진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까지는 까무잡잡하고 동네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이의 모습이다. 지금의 외모로 자리잡힌 건 고등학교 시절로 보인다.
자율학교인 거창고를 입학고사에서 200점 만점에 192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입학한다. (단 강동원이 입학할 당시엔 자율학교가 없었다. 그때엔 그냥 지역 명문고) 고등학교 입학 후 어릴 적 부모님에 의해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하게 된 것이 한이 됐었는지 축구부에 합류할 기회를 잡자 제대로 활약하게 되면서 학업에 소홀했다고 한다. 이 당시 반항심에 거의 백지로 시험지를 내다시피 한 적이 있는데 전교 200명 중 198등을 한 적도 있다고. 고3때, 부모님의 기대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생각에 독하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기계공학과에 특차로 입학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공계 쪽에 재능을 보였고 본인은 수와 셈에 능해 당연스럽게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강동원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과에 온 문과생'
강동원에겐 대학시절이 썩 유쾌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진 않다. 이래저래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모델시절 함께했던 지인 배정남이 방송에서 했던 말로 보면 모델생활 중에도 학비를 벌기위해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든 생활을 한적도 있다고 한다. 따뜻한 사람인데 당시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2학년때 지하철에서 캐스팅 돼 모델계에 입문했다. 빼놓을 수 없는 얘기로, 모델계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탑모델이었다. 모델일때도 다리길이가 유명했는데, 강동원은 키가 186cm이지만 다리길이는 112cm로, 키 190cm의 모델들의 다리길이와 비슷했다고 한다.
한국 모델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섰고 프라다 런웨이에 초청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그때 이미 배우를 준비중이었기 때문이다. 2002 GQ 대한민국을 뒤흔든 18인 중 설경구, 거스 히딩크 등과 함께 선정된 유일한 남자 모델이자, 일본 언더커버, 넘버나인같은 당시 유명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그가 원하는 옷이라면 뭐든지 주겠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 버버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디자이너 우영미의 뮤즈. 모델계를 떠나서도 그녀의 유일한 뮤즈라고 한다. 모델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듯 하다.
하지만 자신은 모델보다는 배우에 뜻을 품고 있었어서 모델에서 배우로 전업하게 된다. 훗날 다시 모델에 복귀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모델계에 미련은 조금 있지만 모델 시절 연예인들의 쇼 출연으로 신인 모델들이 제약을 받는 일이 많아 자신은 절대 캣워킹을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아무래도 이건 자신이 경험했던 일이기 때문인 듯하다.
[3] 배우 활동
본인의 연기 겸 드라마 데뷔작은 2003년 3월부터 방영한 MBC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 다음으로는 2003년 7월부터 방영한 드라마 《1%의 어떤 것》으로 싸가지 없으면서도 잔정 있는 꽃미남 재벌 2세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2004년 1월에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18] 에서 최희철 역을 맡았다.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목소리와 김하늘과 치고받는 억척스러운 억양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2004년 7월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19]에서 정태성 역을 맡았다. 여기서 제대로 꽃미남 이미지로 꽂혔고 강동원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우산 들어주는 장면[20]은 한국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심쿵' 장면으로 남았으며 이후 많은 매체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강동원 본인은 우스갯소리로 이 광경을 극장에서 직접 목격하지 못해서 아쉽다고 언급했다. 본인은 이 당시, 신인으로서 얻은 폭발적인 인기에 '이 영화에서 얻은 인기가 얼마나 갈까'라는 회의감에 젖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극까지도.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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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은 공자의 명언인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으로, 데뷔 이후 변함없는 좌우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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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진이 사무실에서 사투리 연기를 하는 모델을 보고 생김새가 맘에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사투리가 안 고쳐져서 그랬던건데 연기하는걸로 착각했었다고.. 지금도 연기 외에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온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안다. 여담으로 여욱환이 《강심장》에서 한 얘기로는 2002 한일 월드컵이 한창일 때 이탈리아에서 생쇼(?)를 한 적이 있다고(...).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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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주형진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강동원은 주형진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주형진은 강동원의 발성 연습을 돕는 등 현재까지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 때문인지 친분은 배우들보다는 감독과 더 많은 듯. 2012년 11월 강동원의 대체 복무 소집 해제 당일 공백 기간을 기다린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형진의 노래에 강동원의 하루를 담은 강동원 in a day를 영상과 무료 음원으로 공개했다. 10년이 넘는 서울 생활 내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남산타워와 63빌딩, 노량진 수산시장 등에 나타난 강동원을 만날 수 있다. 2016년, 화보를 찍는 도중 주형진의 신곡 '비밀을 말하다' 발표 소식을 듣고 본인이 먼저 뮤직비디오 출연을 제안해, 노개런티로 다시금 출연하며 우정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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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초기에는 《해피투게더》, 《놀러와》 등에 출연한 적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작품 활동 때문에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한 꼭지에 출연하는 것을 제외하면 노출이 정말 없다. 공식 팬미팅도 없다. 무대인사 등을 제외하면 접할 기회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사생활 노출도 꺼리는 편이다. 때문에 지인들의 인스타그램 등 SNS에 근황이 뜨면 팬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운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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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팬카페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생일파티 겸 팬미팅을 했었다. 수많은 팬들이 소액씩 모아 장소 대관과 생일선물 준비 등 행사를 진행하고 참여한 팬들에게 나눠줄 여러 굿즈를 제작했다. 그 후 강동원의 설득으로 생일선물은 받지 않기로 하고 기부 등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당시 생일파티에 다녀온 팬들의 후기에 의하면 강동원은 선물을 받지 않는 이유를 열거하며 자신한테 이런거 하지 말라고, 솔직히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선물 대신 영화를 봐달라고 했다고. 그 후 2015년을 마지막으로 강동원의 요청으로 생일파티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열린 생일파티 겸 팬미팅은 무료로 진행되었다. 현재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팬들과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단관 행사를 진행한다. 2015년 검은사제들 단관 행사에 다녀온 팬들이 강동원의 말을 옮긴 후기에 의하면 강동원은 몇 년간 생일파티를 그만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도 생일이 방학이라 생일파티를 거의 안해봐서 아직도 민망하고, 사실 생일파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처음 생일파티를 시작할 때도 강동원이 거절했지만 카페 운영진들이 팬을 뭐라고 생각하는거냐고 혼냈다고 한다. 그 후 중간에 한번 더 거절의사를 밝혔지만 또 운영진들이 혼내서 계속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그렇다고 생일파티가 싫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팬들을 만나서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생일파티는 하지 않지만 단관 행사는 언제든지 참여할 것이고 오히려 영화 얘기를 많이 할 수 있고 할 말도 더 많아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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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소속사인 더맨 모델 매니지먼트와 결별한 후 2013년 uaa에 들어가기 전까지 개인매니저와 활동했다. 2016년 yg 엔터테인먼트로 옮기며 혼자 활동하는 것이 힘들어 큰 기획사로 들어갔음을 밝혔다. 해외 프로젝트 추진 등을 홀로 감당하는 건 더이상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uaa는 소속 연예인이 5인 이하인 소규모 기획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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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 한승연, 수지, 효린 등 수많은 여성 연예인의 이상형을 독차지 하고 있다. 특히 태연은 《친한친구》 마지막 방송에 육성 녹음으로 출연했는데, 막방 슬픔의 눈물을 순식간에 마르게 할 정도. 일본 성우 히로하시 료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다. 성우 여행사 한국 편에서 히로하시는 강동원 사진만 계속 사댔다. 그리고 대만 편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은 강동원이라구요!"라고 따지는 신이 있는 것을 봐서는 확실한 팬. 그리고 한국에 단독적으로 방문할 때도 강동원이 출연한 영화 DVD를 사들고 갈 정도. 그리고 만화 《해파리 공주》의 작가 히가시무라 아키코도 8권 후기에서 강동원 팬임을 인증. 뿐만 아니라 일본 패션지 SPUR 2013년 7월호의 강동원 특집코너에서 강동원과 직접 만난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다. 이 만화 내용에 따르면 《배가본드》와 《원피스》를 좋아한다고 한다. 히가시무라 만화도 읽어본 적이 있다고. 더불어 여타의 인터뷰들을 보면 덕력이 상당한 것 같다. 덧붙여 건덕후다.
[5] 금수저 라는 오해
금수저 배우로 알려져 있어 데뷔전 부유한 삶을 누렸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데뷔 당시 인터뷰에 의하면 어릴 적 집안 환경은 넉넉지 않았으며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반 사원에서 시작해 강동원이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부사장까지 올라간 신화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어 태어나자마자 유복하게 살아온 금수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강동원의 인터뷰와 부친 강철우의 프로필에 따르면 강동원의 부친은 중견기업 대선조선, 대기업 기아중공업의 평사원으로 근무하다 IMF 때 실직하여 중소기업인 부산산업기계로 이직하였다. 그리고 중견기업 SPP조선과 합병하고 8년 뒤 부사장으로 고속 승진했다고 한다. 이는 강동원이 배우로 데뷔하고 5년 후의 일이다. SPP조선은 2017년에 폐업했다.
아래의 인터뷰를 보면 강동원은 어린시절부터 금수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데뷔 초에 밝힌 일화 (2004, 스타고백)
----어린시절 일화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근무하셨는데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일터에 나가셨던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오셨고, 나는 수십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은 끝에 손가락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내 손가락에는 낫에 베인 흉터가 남아 있다.
어렸을 때 유치원에 공짜로 다니는 행운을 얻었다. 박봉의 샐러리맨이었던 아버지는 내 유치원 등록금까지 지원해줄 사정이 안됐다. 누나만 유치원에 정식으로 다녔다. 머리가 커 누나와 ‘맞먹기’ 전만 해도 난 누나의 뒤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순한 동생이었다. 누나가 유치원에 가면 집에 혼자 있어야 했기 때문에 날마다 유치원에 쫓아갔다. 그런 나를 보고 당리유치원의 정옥주 선생님이 유치원에 무료로 다니도록 배려해주셨다. 그 덕분에 난 유치원 졸업장도 갖게 됐다.
----중학생 때 일화
그날의 내 옷차림은 이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던 추리닝(트레이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대부분이 청바지를 입고 맵시를 뽐내고 있는데 나만 뒤떨어져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날 반 대표로 장기자랑대회의 사회를 봤다.
수십명의 친구들 앞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서 있으려니 솔직히 창피했다. 추리닝 패션이 10년 후인 현재 이렇게 유행할 줄 알았으면 ‘패션의 선구자’인 척 자랑을 할 걸 그랬다(^ ^). 당시 난 옷이라곤 추리닝 두벌밖에 없었다. 그것을 갈아입으며 살았고,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소풍 날 옷 때문에 빚어진 아픈 기억으로 ‘(옷)브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소풍 갔다온 뒤 철딱서니 없이 엄마한테 옷을 갖고 한바탕 투정을 부렸던 모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소풍을 앞둔 어느날 내 방안에 곱게 포장된 옷 한벌이 놓여있었다. 비싼 니트 상의였다. 돈도 없었을 텐데 엄마가 왜 그랬는지. 가슴이 찡해 한동안 말을 잃었다. 난 그 옷이 닳도록 고등학교 때까지 입었다.
----대학생 때 일화
1학년 겨울방학 때 서울 이모부 집에 기거하며 골프연습장에서 고된 아르바이트를 했다.
■ 재벌설 보도 당시 강동원 측의 반박기사
강동원의 한 지인은 1일 "강동원의 아버지가 SPP중공업의 부사장이라는 게 알려지고 난 뒤, 마치 강동원이 재벌 2세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면서 "강동원의 아버지는 30여년간 중공업 분야에 종사했고, 말단 사원에서 출발해 올해 초 부사장에 이른 분"이라고 말했다. (2008, 중앙일보)
지금까지 배우 '강동원'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