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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 - 패티김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2. 11. 26. 20:11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가수 패티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한국형 여성 팝 보컬의 시작
Mnet 레전드 아티스트 100에서의 소개문구

대한민국의 가수. 전설적인 디바로, 한국 현대 대중가요사에서 숱한 '최초'와 '최고'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스탠다드 팝의 선구자, 이미자, 현미, 윤복희와 더불어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이자 디너쇼의 여왕.




[2] 활동
1956년에 국무총리배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입상하여 데뷔하였고, 2년 후 1958년 미8군 무대에서 가수 이해연과 듀엣으로 가수 데뷔하였다. 데뷔 당시 예명은 '린다 김' 이었는데 1959년 초에 미국의 여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현재의 예명으로 바꾸었다.[6] 패티김의 등장 이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지켜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스타가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이끌어 가는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해방 후 1960년, 일본시장에 처음 진출한 것을 비롯해[7] 한국가수 2번째 미국시장 진출[8], 한국 여가수 최초 미국 카네기 홀 공연[9][10], 한국 가수 최초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 등 사실상 현재 한국 가수들이 이뤄 낸 해외 커리어를 모두 시도한 가수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시도에 의의가 있고, 본인도 자서전에서 밝혔듯 크게 고무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동양여성으로서 홀로 미국시장에 진출하려 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3] 이미자와의 라이벌 관계
가수 이미자하고는 라이벌 관계로서 함께 묶여 언급된다. 데뷔시기도 같은데다가 나이대도 비슷하고, 음악스타일 역시 이미자가 트로트의 여왕으로 한국적인 정서가 강한 노래를 주로 불러왔다면 패티김은 스탠다드 팝 위주의 세련되고 서구적인 정서가 다분한 노래를 주로 불러왔다는 점에서 비교되었다. 또한 대중성 측면에서도 이미자가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여성상의 가수였다면 패티김은 세련되고 도시적인 분위기로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언론이나 대중이나 둘을 항상 라이벌 관계로 묶어 자주 비교했다.

실제로도 서로 신경전이 치열했던 걸로 유명했다. 작곡가 임석호가 방송에서 밝히기를 패티김을 영입하고 싶어했던 이미자의 소속 음반사 회장이 "우리와 계약하면 이미자와 같은 급으로 대우 해주겠다"고 직접 스카웃 제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패티김 측에서 "최고의 대우도 아니고 이미자와 동급 대우가 말이 되냐" 라며 단칼에 거절하는 바람에 계약이 불발되었다. 그 외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로 방송국 측에서 패티김과 이미자를 동시에 섭외하려고 했었는데, 어느 한 쪽의 출연 순서가 뒤로 밀리면 캐스팅을 거부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일부러 1순위로 써진 큐시트를 두 가수에게 보냄으로서 겨우 캐스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먼저 도착한 가수가 리허설을 빨리 끝내고 무대에 먼저 올라가자 '나 일 있어서 무대 안 올라간다' 며 그냥 노래를 안 부르고 가버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가수 패티김 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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