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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 ]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0. 2. 7. 00:25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재난 사고인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오후 5시 57분에 발생했던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안전 사고중 하나이다. 6.25 전쟁 이후 가장 큰 인명 피해를 안긴 사고이기도 한데, 원인이 부실공사로 밝혀지면서 안전불감증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오죽하면 이 사고가 발생한 직후 원인을 알기 전까진 전 세계의 모든 건축가들이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다. 외부의 충격이 없이 붕괴된 모습이 이렇게도 처참하다니 말도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연장선상에서 사고 직후 영국 언론에서는 외부의 충격 없이 건물이 저런 형태로 완전히 붕괴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북한에 의한 테러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결국 원인이 부실공사로 밝혀져 여러모로 더욱 충격을 주었다. 이 사고는 세계 건물 붕괴 관련 참사 중 사망자가 10번째로 많은 참사로 기록되었다.
당시 구조에 힘썼던 소방 대원들이 20주기를 계기로 한 자리에 모였다.

 

 

 

[2] 붕괴 이전의 삼풍백화점

해당 백화점의 운영법인은 삼풍건설산업이며, 창업주 이준 회장은 1960년대, 중앙정보부의 인맥으로 강남 서초구의 군용지를 불하받았다. 이 땅은 1970~80년대 강남 개발 열풍에 급격히 발전하고 이준은 그동안 건설로 많은 돈을 벌었다. 이때 지은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이다. 이준은 그동안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 서초구 외인주택단지를 철거한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삼풍아파트를 건설하고 아파트 단지 내 근린상업지구 개념으로 삼풍백화점도 함께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후술하다시피 단순 근린상업지구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매우 컸다.

 

 

 

[3] 어마어마한 규모

삼풍백화점은 1987년 5월 착공하여 1989년 12월 개장했는데, 당시 전국 2위 규모의 단일매장이었다. 하얀색 바탕의 기존 백화점 건물 디자인을 탈피하여 외형 색상을 분홍색으로 채택했고 콘크리트와 유리의 조화로 당시에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게다가 초호화 쇼핑몰의 컨셉으로 출발한 삼풍백화점은 지금 기준으로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각종 명품 브랜드들을 대거 입점시켜 1980년대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던 강남구, 서초구 지역 고객들을 쓸어모으게 된다. 이게 어떤 수준이었냐 하면 현재의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이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조차 당시의 삼풍백화점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삼풍백화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강남 한복판의 핵심 지역에 속해 있었다. 당시 2호선, 3호선의 환승역인 교대역과 가까웠을 뿐더러, 1993년 3기 지하철의 9호선 사평역 1블럭 거리라는 네임드급 입지를 자랑했다. 게다가 근교 강남에 (현재 신분당선 3단계의 전신인) 11호선 강남 구간까지도 예정되어 있던 핵심의 핵심이었다.

삼풍백화점은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매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게 된다. 중앙홀 4층에 있던 아트홀은 서울 시내 유명 공연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곳에서 데뷔하기도 했다. 또 인테리어 또한 당시로서는 고급스러웠었다. 또 수입품과 사치품을 많이 판매했는데, 이 때문에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유명한 페라가모를 직수입해 판매하기도 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직수입 브랜드들을 들여왔다. 물론 이 브랜드들은 붕괴 이후 국내를 떠난 경우가 많다. 또 B동에 수영장 같은 문화공간을 만들어 손님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 문화전과 이태리 문화전 같은 행사를 통해 해외 문화 및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붕괴 당시에는 프랑스 문화전을 준비 중이기도 했다. 그리고 94년에는 탤런트 최명길을 모델로 대대적인 광고 에 나서기도 했으며, 영국에서 욕실용품 브랜드인 넥타, 이태리에서 의류 브랜드인 마리나리날디를 직수입해 별도의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생활용품 전문점인 아프레미디를 자체 런칭해 백화점과 압구정동에 매장을 열기도 했다.

 

 

 

[4] 부지 용도

사고 원인에 앞서 설명할 것은 삼풍백화점 시공 계획이 세워지기 전 본래 이 부지는 주거용이었다는 사실이다. 본래 삼풍백화점이 들어선 부지는 삼풍건설산업에서 지었던 외인 주택 단지의 일부였고 주거용 건물만 세울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삼풍백화점은 본래 그 자리에 지어질 수 없는 건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삼풍 측은 이 외인 단지를 허물고 삼풍아파트와 함께 백화점을 짓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지 용도를 변경하여 공사를 하게 되었다. 때문에 바로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매우 가까운 거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었고 까딱 잘못되면 아파트의 연쇄 붕괴로 인하여 수십 배의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부지 용도 비리를 두고 붕괴 직후에는(부실공사가 붕괴 원인임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에는) 허약한 지반 때문에 건물이 붕괴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비록 삼풍백화점의 붕괴 원인은 지반이 아니었지만, 삼풍백화점이 건설 시작부터 철저하게 비리의 온상인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5] 부실공사

위 설계도는 진짜 건설되었어야 했었던 설계도로, 1987년 우원건축사무소가 설계한 것이다. 이렇게만 성실하게 지어줬어도 삼풍백화점은 비록 비리로 받은 더러운 돈으로 지어져서 30년 넘게 지난 지금까지 비리로 간간히 까이거나 IMF 사태를 지나는 사이에 기업이 사라졌을 수 있었을지라도 건물만큼은 나름 건재했을 것이다.

원래 삼풍백화점은 '삼풍랜드'라는 이름으로 바로 옆에 있던 삼풍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대단지 종합상가로 설계되어 우성건설에서 시공을 맡는 것으로 최초 발주가 되어 공사가 진행되었다. 거의 완공에 가까워질 무렵 건축주인 이준 회장은 건물 용도를 백화점으로 변경하고 시공사에 원래 4층이었던 설계에 1층을 더 얹어 도합 5층으로 건물을 시공할 것을 요구했지만, 시공사인 우성건설 측은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증축을 거부했고, 결국 이준 회장은 우성건설과의 시공 계약을 중도 파기시키고는 자사 계열사인 삼풍건설산업이 시공을 이어가게끔 한다. 사실 백화점과 같은 복합 건물은 설계 변경 시에 구조 전문가의 검토가 필수적이나 이준 회장이 수익을 위하여 건물의 안전성을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구조 설계를 변경한 게 문제였다. 아무리 멍청하더라도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하자는 대로 했으면 이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목숨걸고 무조건 층수를 올리고야 말겠다는 그런 심산이었으면 아예 깨끗하게 다 헐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지었어야 했다. 후술하겠지만, 이 구조의 건물은 절대 고층으로 지을 수가 없다. 즉, 고층을 견딜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6] 부실관리

그 후 이 회사는 삼풍 건설산업이라기보다는 '삼풍 철거업체'에 가까웠다. 그냥 약 5년 간 조금씩 철거되고 있었다고 하는 게 맞다. 보강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내구도를 깎아내리고 있었으니 이런 참사는 예고된 것이었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인터뷰한 당시 청소부의 증언에 따르면 휴점일에도 매장을 재배치하고 공사를 하느라 쉬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부실공사도 문제였지만, 건물의 상가 배치는 그보다 더 심각했다.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문제였다.

당장 불법 증축으로 추가된 5층에 처음에는 비교적 바닥 하중이 가벼운 롤러장을 설치하려 했으나, 경영진들이 이런 건 백화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다시 생각을 바꿔 롤러장 대신 대형 음식점을 유치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정부 기관의 승인도 받지 않고 시행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불법이었다.

식당가 특성상 무게 괴물인 냉장고는 필수이며, 무거운 주방 기기들과 세라믹 식기들을 항상 잔뜩 쌓아두고 책걸상까지 들여놓는 등 하중의 부담이 상당히 높아 매우 위험한 지경이었는데, 거기에 한 술 더 떠 덧붙여 '한국은 오래 앉아서 밥을 먹기 때문에 바닥에 온돌을 설치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까지 받아들여지면서 물을 이용한 온돌 난방 시설까지 설치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런 방식으로 식당가 설계를 할 경우 난방 장치의 중량만 해도 건물 3층 정도를 쌓는 정도의 엄청난 하중이 가해지기 때문에 오늘날의 백화점에는 한식당이라고 해도 난방 장치는 설치하지 않거나 전기패널을 설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백화점 푸드코트들이 대부분 지하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7] 붕괴의 치명타가 된 에어컨 냉각탑

거기에 이준 일당이 냉각탑을 옮긴 방법도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무거운 물건은 대형 크레인을 사용하여 공중으로 들어서 옮기는 것이 정상이나, 삼풍 경영진들은 돈이 아까워서 냉각탑 아래에 롤러를 장착하여 옥상 상판 위에서 천천히 끌어가며 반대쪽으로 옮기는 정말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행위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결국 1대당 12톤이나 되는 그 무거운 걸 옮기는 동안 옥상 바닥과 지지 구조물에 엄청난 부담이 가해졌고, 건물 붕괴의 단초 부분이었던 5E 지주 부분에 견디지 못할 하중이 가해졌다(위 첫 번째, 두 번째 사진). 특히 이동 후에도 계속 작동되는 에어컨 실외기의 진동은 가뜩이나 불안정한 옥상을 비롯한 5층 구조물에 그대로 전달되어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을 점차 초과하기 시작했다(위 세 번째 사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재난 사고인 '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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