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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축구선수 ] - 박지성 본문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전 축구선수 ' 박지성 '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대한민국 축구선수 출신의 축구행정가이며, 대한민국 최초의 프리미어 리거이다.
2000년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한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2014년 PSV로 돌아와 1년을 뛰고, 무릎 부상 여파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였다. 국가대표로서는 2002년 월드컵 주전 멤버부터 2010 남아공 월드컵 주장 등까지 맹활약했다. 은퇴 이후엔 JS파운데이션 이사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구단 앰버서더 등으로 다년간 활동, 축구행정가로도 경험을 쌓다 2021년부터는 K리그 전북 현대 모터스 구단의 어드바이저로 활동 중이다. 동시에 런던의 QPR에서 U-16 코치도 겸하면서 코치 자격증을 따기 위한 연수도 하고 있다
[2] 행적 요약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관악구 신림동에 정착한 부모와 살았으나 태어난지 몇년 안 되어 아버지의 사정으로 부친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775번지에서 자랐다. 그러다 초등학교[22] 3학년 때 수원시로 이사하여 수원 산남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나# 축구부 해체로 이후 세류초등학교로 전학갔다. 이후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를 거쳐 명지대학교에 입학하였고, 명지대 1학년 재학 중이던 2000년 일본의 교토 퍼플 상가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 입단하여 프로 데뷔하게 된다.
국가대표 선수로서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후 한동안 주전과 비주전을 오갔지만 히딩크호의 황금세대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면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2강 조별리그 본선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 후반 70분 극적인 결승골을 성공시켜 1:0 승리를 견인하는 등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고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준우승팀 프랑스를 상대로 후반 81분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을 패배 직전에서 구하고 프랑스에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첫승이라는 기록을 새로 썼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본선이 열리기 직전 한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생 꿈[23]은 "대한민국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며 당찬 포부를 천명했고, 이후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하면서 대회 32강 조별리그 본선 첫 경기 그리스전에서 쐐기골을 기록하는 등 자신의 평생 꿈이라고 밝혔던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이루어냈다
[3] 플레이스타일
교토 시절과 국대 초창기에는 윙백과 중앙 미드필더로 시작해서 2002 월드컵을 전후로 교토에서도 윙포워드로 정착했고, PSV 시절은 쭉 윙포워드로 뛰었다. 히딩크호 이후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시작하여 코엘류호와 본프레레호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빈도수가 늘기 시작했고, 아드보카트호가 출범했던 2006월드컵 직전에는 월드컵 본선에서는 다시 4-3-3의 윙포워드로 뛰기 시작했다. 그후 허정무호가 출범하고는 4-4-2의 왼쪽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이 출전했다. 맨유에서는 4-4-2의 윙어를 가장 많이 소화했고 이따금씩 4-3-3의 윙포워드로도 출전했다. 09/10 시즌과 때때로 공미로 출전하였다. 말년으로 접어들수록 중앙으로 스위칭하는 움직임이 잦더니 맨유 말기와 QPR, PSV 에서는 중앙 미드필더와 윙어 번갈아가며 출전했다. 공격수라는 의견과 미드필더라는 의견이 자주 충돌하는데, 공격 진영과 수비 진영 가릴 것 없이 뛰어다니는 스타일이며, 본인이 가장 오랫동안 뛰었던 팀에서의 역할 또한 미드필더에 가깝고[39], 본인의 성향도 미드필더 성향이다
[4] 전술적 가치 및 입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교토 퍼플 상가 시절에서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전했었다. PSV 에인트호번 시절에는 초반에는 부상보다 힘들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힘겨운 시기가 있었지만, 적응한 후에는 거의 풀타임 주전으로 출장했다.[51] 체력 관리 차원에서 결장시킬 정도. 당시의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움직임이 왕성하고 역동적이었다. 공격 시에는 빠른 스피드와 침투 능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볼이 오지 않아도 언제나 공간을 찾아 움직였고 수비 시에는 전방부터 압박을 전개하고 윙백과의 뛰어난 협력 플레이를 보여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는 로테이션 멤버로서[52] 공격과 수비에서 공헌하였으며, 중요 경기에서는 맨마킹 등의 임무를 부여받기도 하였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현역 선수로 활동하던 시기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프리미어 리그를 넘어 유럽과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수준 높은 구단[54]이었으며 매 시즌 타 구단보다 컵대회를 훨씬 많이 치르는 트레블 목표의 우승권 빅클럽이었기 때문에[55] 체력소모가 극심한 미드필더진의 로테이션은 필수였기도 하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핵심 주전급 선수[56]몇몇을 제외하고 특히 미드필더진의 로테이션 시스템을 고집하곤 했다.[57][58] 박지성의 경우 전술상 필요한 경기, 특히 수비를 두텁게 가져가야 하는 강팀과의 경기에서 자주 선발로 출전했다
[5] 대회기록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
J2리그: 2001
천황배: 2002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2013~2014)
에레디비시: 2002-03, 2004-05
KNVB 베이커: 2004-05
요한 크루이프 스할: 20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프리미어 리그: 2006-07, 2007-08, 2008-09, 2010-11
풋볼 리그컵: 2005-06, 2008-09, 2009-10
FA 커뮤니티 실드: 2007, 2008, 2010, 2011[67]
UEFA 챔피언스 리그: 2007-08
FIFA 클럽 월드컵: 2008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FIFA 월드컵 4위: 2002
AFC 아시안컵 3위: 2000, 2011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안 게임 동메달: 2002
지금까지 전 축구선수 ' 박지성 ' 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