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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듀서 ] - 유희열 본문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프로듀서 ' 유희열 '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음악 프로듀서, 방송인, 기업인. 안테나 대표.
1990~2000년대 대한민국 가요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으로 원맨 밴드 토이의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19] 방송 활동으로는 FM 음악도시의 DJ 겸 시장,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DJ였으며,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MC이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으로 현재 대회 심사위원이기도 하며, 수상자 중 대중음악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발라드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매 음반마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구성을 시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으나, 2022년 표절 논란으로 인해 유희열의 천재성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 본인이 그동안 쌓아올린 이미지에도 크나큰 손상이 가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으로 14년만에 졸업했다. 90학번인데 2004년에야 졸업. 중간에 군 복무 기간[20]이 포함된다
[2] 학창 시절
2남 중 둘째.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해 마음고생을 하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창 시절을 겪었다. 라디오천국에서 작곡가 롤러코스터의 지누가 증언한 것에 따르면, 고교 시절 공연 순서 때문에 유희열의 스쿨밴드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유희열의 친구들이 다 덩치로나 주먹으로나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지누의 밴드는 여리디 여린 친구들이 헤비메탈을 했고[22], 유희열의 밴드는 조폭같은 친구들이 어떤날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
실제로 유희열 본인 말로 폭주족 뛰고 정학을 먹기도 했고, 어머니는 오토바이 타는 건 말리지 않을테니 앞바퀴만 들지말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예능을 많이 하게 된 이후 마른 몸 때문에 '반건조 차인표' 같은 별명이 생기며 연약한 이미지가 생겼지만 사실 젊었을 적 유희열의 인상과 표정, 눈빛 등은 상당히 사나운 느낌이 든다.
이때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어머니와 형, 그리고 어떤날의 음악이었고, 방황 끝에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다. 피아노는 고3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집안이 상당히 가난해서 피아노를 놓을 장소가 없어 혼자 자취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처음엔 피아노가 없어 종이 위에 그려진 피아노로 상상 연주를 하고, 멜로디언을 훅훅 불다가 본격적으로 피아노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자기가 세상에서 멜로디언은 제일 잘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주변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서울대 진학에 성공한다. 스케일이 음계라는 뜻인지도 모르던 백지 상태에서 1년만에 거둔 성과였다고. 합격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 다음 날 조간신문에 실렸다고 한다. 물론 유희열의 작곡 기본기가 출중한 덕이었겠지만 2000년 이전까지 서울대 작곡과에는 남학생 할당제 50%가 적용되어 남학생에게 매우 유리한 입시 제도가 적용되었다. 2001학번부터 성별 할당 폐지. 그런데 유희열의 경우, 애초에 담임 선생이 서울대 어느과를 써도 붙을 수 있다고 확언했으니 더 높은 과를 썼어도 붙었을 것이다. 음악 공부 뿐만 아니라 학과 공부 자체도 매우 열심히 했음을 알 수 있다.
[3] 음악 활동
진학을 앞두고 동아기획으로 찾아가 김영 사장에게 데모 테잎을 내고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던 중, 뒤에서 킥킥대면 비웃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김종진, 전태관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가 '학생, 거 듣자 하니 대학교 좋은 데로 갈 거라면서?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였다고…[24] 후에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야, 너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이런 걸 하려고 해?'라는 말부터 했다고 한다. 김종진, 전태관이 밝히길 '얘는 나중에 분명히 우리 밥그릇을 엄청나게 뺏어먹겠구나 싶어서 싹부터 잘라놓으려고 했다'고 한다.
가수 윤상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은 이미 중학교 시절 작곡을 시작하였고, 당시 작곡한 곡을 가수에게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흑역사인건지 윤상도 유희열 본인도 어떤 가수의 어떤 곡인지는 밝히지 않았다.[25] 다만 굳이 따져보자면, 현재까지 앨범으로 발매된 유희열의 가장 오래된 노래는 1988년에 나온 김형용의 '꿈에 잠기어'이다. 유희열이 고2 때 발매된 걸로 보아서 중학교 때 만든 노래가 이 곡이 아닌가 하고 추측된다. 참고로 김형용은 1980년대에 나름 인기있던 가수로 유희열의 사촌 형이다
[4] 특징
자뻑+변태 중년' 캐릭터가 대중에게 기묘하게 호감으로 먹힌 케이스. 유려한 말발과 겸손하고 개념있는 행동 등으로 까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가끔 인터넷에 얼굴 가지고 까는 사람이 있다고 라디오에서 밝힌 바 있다. 팬들 사이에 통하는 통칭이 감성변태.
주위에 SNS를 하는 지인들이 많은데, 반대로 본인은 SNS를 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는 기계에 약해서 스마트폰이나 트위터를 쓰지 못한다고 밝혔지만 라디오에서는 음표를 찍느라 바빠서 트윗을 할 시간 없다고 농담했다. 실제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하나 눈팅 용도로만 쓰고 개인적인 글을쓰거나 게시물을 올리진 않는다. 제로보드 기반의 본인 팬페이지에 근황을 올리는 수준.
인터넷 서핑을 자주하는 듯하며 인터넷상의 유행어를 스케치북이나 라디오천국에서 자주 선보인다. 하지만 게임에는 관심이 없는지 라디오 사연에서 SCV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무슨 의미인지 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1박 2일에 출연했을 때 게임 문제 때문에 김종민에게 패배했다.[27]
코미디언 신보라와 외가쪽으로 6촌 사이란게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신보라가 데뷔하기 직전, 어머니와 함께 유희열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빠 방송국에서 봐~'라고 하길래 유희열은 방청 온다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TV에 나온 신보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후에 둘이서 싼타페 광고를 찍었다
지금까지 프로듀서 ' 유희열 ' 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봡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