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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 - 나혜석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2. 1. 22. 14:00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화가 ' 나혜석 '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차미리사와 같은 여성지식인로 평가받았다.[3][4]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정월(晶月)이다.

조선 인천부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출생으로 수원 삼일소학당과 서울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의 여자미술전문학교[5]에 유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6] 귀국 후에는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내기도 했고, 김일엽과 함께 잡지 <신여자(新女子)>를 창간, 발행하기도 했다



[2] 어린시절
나혜석은 나 참판댁 또는 나 부잣집이라고 불리는 경기도 수원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나기정(羅基貞)과 어머니 최시의(崔是議) 사이의 2남 3녀 중 넷째(차녀)였다. 동복 형제들 외에 나계석이라는 이복언니도 있었는데, 나기정이 첩과의 사이에서 낳은 서녀였다. 나계석은 나혜석이 태어날 무렵, 13살의 어린 나이에 조혼을 했다.[7]

나혜석은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는 등 부족함 없는 삶을 보낸 것으로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고위 관료였던 아버지 나기정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자녀들에게 신교육[8]을 받게 해주는 등 상당히 진보적인 엘리트처럼 보였지만, 시대적인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딸들에게는 정식 이름이 아닌 아명을 불렀고, 나혜석 또한 진명여학교 입학 전까지는 정식 이름 대신에 '나아기(=나 참판댁 아기씨)'[9] 로 부르다가, 학교 입학 후에야 정식으로 ‘나명순'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개인사 때문인지 나혜석은 이름에 대해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10]



[3] 성평등을 외치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시, 소설, 칼럼, 강연 등을 통해 '여자도 인간이다.'라고 주장하였다. 1927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을 때의 어느 날 그는 프랑스의 한 여권운동가를 만나 ‘여성은 위대한 것이오, 행복된 자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파리에 체류할 무렵, '남녀관계, 여성의 지위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답을 얻기 위해 혼자 계속 파리에 남기로 결심했다.'라고 했다. 또한 귀국 후 그는 여행기 <구미유기>에서 영국 여성참정권 운동에 참여한 영국여성운동가의 활약을 알렸다. 인간평등에 기초한 참정권운동뿐만 아니라 노동, 정조, 이혼, 산아제한, 시험결혼 등 여성문제를 소개하였다.

그녀는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조선 신여성의 표본이 되었다. 그는 억압된 조선 여성들을 대변하고,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고자 했다. “여자도 사람이다.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라는 주장을 글로만 쓴 게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실천한 것이다.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가부장적 사회를 질타했던, 글과 그림으로 ‘여자도 사람’임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그는 여자, 남자 이전에 사람이라며 여자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라며, 여자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해줄 것을 거듭 주장하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와 일제, 보수적인 지식인과 노인, 유학자 등은 모두 그의 견해를 외면했다.



[4] 최후
자식들에게의 일방적인 정으로 가족과 사회적으로 멸시를 당하면서도 파리로 출국하지 않고 국내에 남았다고 한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 커서 말년에는 자식을 보고싶어 많은 시도를 했지만 모든 아들딸들은 어머니의 방문을 거부하였다. 여담 항목에 후술한 아동 학대 논란이 주원인인 것으로 점쳐지는 편.

요양원[12]에서 탈출하면서까지 자식을 보려 했으나 결국 길에서 쓰러져 발견되었으며, 1948년 12월 10일 저녁 8시 30분 서울시립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서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5] 어록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디다.
(중략)
조선 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이혼고백서」 중에서

인형의 가(家)

나혜석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노라의 주인공인 그 '노라'가 맞다."
최후로 순수하게
엄밀이 막아논
장벽에서
경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주게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랑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저

(하략)


지금까지 화가 ' 나혜석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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