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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구인 ] - 김호철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1. 12. 8. 18:52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배구인 ' 김호철 '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다미~ 틀어 치는 거 연습했잖아~[2]

광국아! 떨리냐? 부들부들 떨려?


대한민국의 배구인.

현역 시절 대표 스타 플레이어였고, 지도자 시절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배구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대한민국 배구 대표팀 감독 시절 후술할 과오와 오판 등으로 그 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2] 유년시절
밀주초등학교 때 처음 배구를 시작하였는데, 원래 그는 중거리 육상 선수로 1,500m를 4분대에 뛰었던 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장에서 굴러온 공을 주워서 갖다 주고 보니 지루한 육상보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배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집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육상과 배구를 같이 하게 되었고, 육상 실력도 좋은 편인데 당시 그가 다니던 학교와 경쟁 관계에 있던 학교를 의식한 나머지 그는 유급을 하게 된다.

중학교 때부터는 배구에만 전념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대신중학교로 전학하였다. 키가 작아 세터를 했지만 그의 실력이 뛰어났고, 이로 인해 중학교에서 또 1년을 유급하게 된다. 지못미.



[3] 선수시절
대신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1975년에 생애 첫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197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김호철은 현란한 토스워크를 선보였고, 이에 힘입어 대한민국이 4위에 입상하자 이탈리아 언론이 "원숭이가 나무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며 한국 팀의 선전을 전했다. 이 중심에 섰던 김호철은 이탈리아 클럽 팀으로부터 이적 제의까지 받았고, 그로부터 3년 뒤 멕시카노 파르마에 입단함으로써 성사됐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금성통신(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에 강만수와 함께 입단, 짧으나마 금성통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였다.

이 때 그보다 먼저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였던 대한민국 여자 배구의 레전드 조혜정[3]과 '아침이슬'로 유명한 가수 양희은이 그의 이탈리아 리그 진출을 돕기 위해 나섰다.[4] 양희은은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김호철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고, 이를 토대로 김호철은 이탈리아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인연으로 조혜정과 양희은과는 서로 누나 동생이라 부르는 관계가 되었다.[5] 그리고 훗날 조혜정이 GS칼텍스 감독에 취임한 후 김호철 감독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게 된다.[6]



[4] 전술 스타일
한때 세계적인 전술형 세터 출신이다 보니 조직배구를 주로 구사하며 센터의 유기적인 플레이를 상당히 강조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현대캐피탈 부임 초창기에는 센터들에게 상대가 보이지 않게 네트를 하얀 천으로 가리고 블로킹 연습을 시킬 정도였고 그 당시 멤버였던 이선규, 윤봉우, 하경민 등은 김호철의 낯선 블로킹 훈련으로 고생했다. 하지만 그덕에 10년이 지난 2017년에도 이들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 1기 시절에는 공격의 밸런스를 중요시 여겼고 3인 리시버 체제를 썼다.[32] 용병 역시 몰빵배구를 깨는 데 효과적인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던 숀 루니와 권영민의 합작품 변태C퀵은 시즌을 지배했다. 단 강서브를 자제하게 하는 성향을 보였는데 이 문제는 결국 하종화 감독 이후 좀더 서브를 좀더 강화하면서 나아졌다.[33]문제는, 팀의 사이즈를 살리면서 밸런스에 맞는 배구를 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레프트의 수비능력을 때우기 위해 리베로 오정록이 엄청나게 혹사당했다. 결국 2번의 우승 이후 오정록은 유리몸이 가속화되어 시즌을 제대로 치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고 박종영은 오정록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김호철 감독은 이 리베로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다시 삼성화재에 우승을 내주고 만다.


지금까지 배구인 ' 김호철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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