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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선수 ] - 이호성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1. 9. 28. 23:36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야구선수 ' 이호성 ' 에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사업가. 2008년에 네 모녀를 살해한 후 자살했다.

전직 해태 - KIA 타이거즈의 야구 선수로 역대 두 번째 20-20 클럽 가입 선수[7]로 해태 시절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하였고, 해태 타이거즈가 거둔 아홉 차례 우승 가운데 네 차례에 공헌하였으며, 90년대 타이거즈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은퇴 후에도 예식장 사업 성공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는가 싶었지만... 결국 경마장 사업 실패에 이어서 일가족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살인마로 전락해 야구인들과 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자살로 인생을 마쳤다. 사후에도 그는 야구계의 금지어가 되어 야구 관련 종사자들과 야구팬들은 물론 대한민국 대중들 모두에게 언급이 기피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2] 선수생활
광주서석초 - 광주충장중 - 광주일고를 나온 광주-해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호타준족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광주일고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연세대 시절에는 더욱 기량이 발전하여 4번타자로 활약하였다. 4학년 때는 제1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어 나름 국대 경력도 있는 선수.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고교-대학 동기인 포수 정회열과 같이 1990년 고향팀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해태에서 데뷔했으며,[8] 입단 첫해인 1990년과 이듬해인 1991년, 데뷔 첫해부터 2년 연속으로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을 하며 혜성같은 데뷔를 알렸다. 해태가 1990년대에 차지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서 모두 주축으로 활약했고, 1980년대 김성한과 한대화의 뒤를 이어 홍현우, 이종범 등과 함께 1990년대 해태 중심 타선의 한 축을 담당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91년 제1회 한일 슈퍼게임, 93년 한일 프로친선대회, 97년 한일 프로골든시리즈 등 당시 몇 없는 국제경기에도 꾸준히 대표로 선발되었다.



[3] 은퇴 그리고 몰락
어쨌든 이호성은 은퇴식도 제대로 못 치르고 은퇴했지만, 그 동안 벌어놓은 많은 돈을 바탕으로 몇 년간 준비를 하여 호성 웨딩홀을 차렸는데, 처음 2년간은 잘 나갔다. 직원은 70여 명에 연간 매출액이 7~80여억 원에 달했으며 광주광역시 뿐만 아니라 순천시와 목포시에까지 분점을 낼 정도로 엄청 대박이 났다. 또한 해태 타이거즈 선수로 지내면서 야구계에 쌓아놓은 인맥도 탄탄했기에 장성호를 비롯한 여러 해태 - 기아 출신 선수들도 결혼식을 할 때 호성웨딩홀에서 올리는 게 반쯤 관례가 되고, 전 동료 선수들이 주변인물들에게 알아서 홍보를 해줬기에 고정손님층도 계속해서 있던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것이 그만 몰락의 시작이 되었다.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실내 화상 경마장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100억 원 정도가 소요되는 마권사업에 자본금이 모자라자 가족들을 보증인으로 해 10억 원을 빌렸고, 그것도 모자라서 은행에 담보를 잡고 35억 원을 빌렸다. 하지만 주민들의 도박장 반대 여론에 밀려 경마장 사업은 백지화되었고, 이에 절망한 이호성은 본인이 직접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을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한 농림부!’라는 제목의 탄원서까지 청와대에 올려보았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100억 원이라는 초대형 부도를 내고 사업을 망치고 말았다. 



[4]  기타
씨름 천하장사 이만기를 팔씨름에서 1초컷 한 적도 있고, 500원 주화를 두 손가락으로 접거나 엄지로 못을 눌러박는 정도의 완력이었다. 유도 실력 또한 엄청나서 소년 시절 유도를 시작하자마자 전국대회 우승자를 압도적으로 이겼다.

어린이 & 가족 살해에 이은 자살이라는 점에서 한 해 앞서 일어난 미국 프로레슬러 크리스 벤와 사건과 비교된다. 심지어 둘다 1967년생이다![22]그러나 크리스 벤와는 직업인 레슬링으로 인한 두뇌 손상과 그로 인한 약물 중독 및 환각 상태에서의 무의식적인 공격 본능이 그의 우발적 살인의 발단이 된 반면, 이호성은 정상적인 두뇌를 가지고서 미리 범행을 계획하고 어설프게나마[23]증거를 은폐하려 한 점 등으로 볼 때 개인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발단이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또한 WWE에서의 기록이 말소된 전적이 있는 크리스 벤와와는 달리[24], KBO 측은 이호성 사후에도 그의 공식 기록을 삭제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야구선수 ' 이호성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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