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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사고 ] - 530GP 사건(김일병 사건)

지식백과사전님 2021. 8. 22. 14:24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사건사고인 '530 GP 사건 '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2005년 6월 19일 경기도 연천군 소재 대한민국 육군 제28보병사단 제81보병여단 수색중대 530GP에서 김동민 (1984년생, 당시 20세) 일병이 내무실에 핀이 해제된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8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한 사건으로 이른바 '김일병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범인 김동민 일병은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 국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2] 상세
사건 당일 전방 GP에선 사고 발생 당시 북한군의 공격으로 상황이 전파되기도 했지만 오래 안 가 정정되었다. 모 사단에서 당직 맡던 군필자의 말에 의하면 초기 상황연락 보고 받을 당시에는 영현백[1]과 함께 태극기를 준비해달라는 보고[2]가 있었으나, 이내 정정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의 희생자 유족 중 일부는 아직도 이 일이 북한군의 소행이고,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국군교도소에 수감중인 가해자 김동민을 찾아 면회신청을 줄기차게 하고 있으나, 김동민은 이들의 면회를 거절하고 있다.



[3] 원인
2000년대에 들어오자 그래도 군대에서 노골적으로 대놓고 패거나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루는 일은 많이 줄어드는 듯 보였다.[3] 그러나 이건 인식이 바뀐게 아니라, 감시해서 구타를 못하게 막으니까 벌어진 것이므로 독립부대의 구타는 여전했고, 가해자 김동민 일병 본인도 다른 GP에서 이미 이런 일을 겪다가 견디다 못해 사고를 치고 전입을 온 자원이기도 했다. 해당 GP에서 심한 부조리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마찰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아마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해 총기난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4] 사건의 여파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대한민국 국군은 발칵 뒤집혔고, 특히 육군을 위주로 모든 부대에 걸쳐 부대 조사와 소원수리가 행해졌다.[4] 전군적으로 병영문화혁신 운동이 일었고 그 유명한 웃음벨도 이 때 개발되어 뉴스까지 탔다. 육군 내 만연했던 구타, 갈굼, 가혹행위, 기수열외, 내무부조리 등 병영의 악습들이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도 되었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개선점을 찾은 것으로 평가할만한 점이다. 특히, 육군 28사단은 전면적으로 해체되었다가 재편되는 굴욕을 당했다. 당시 중대장대대장연대장사단장이 전부 군복을 벗게 되었고 군단장에게는 경고장이 발부되었다고 한다. 이들을 감독하던 담당 병기 부사관은 아예 보병으로 전과되었다. 이후 28사단 역시 내무부조리가 많이 사라져갔지만, 또 다시 2014년에 윤 일병 사건이 일어나면서 여전히 완전하게 개선되지는 않았음을 잘 보여줬다.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이 사건은 육군에게는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내부 부조리가 심한 군대의 특징은 굉장히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실제 2005년 논산 육군훈련소 인분 사건 당시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당시 육군훈련소장 허평환 소장[5]은 MBC 기자에게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청탁까지 하는 막장짓까지 했을 정도였지만 결국 폭로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대대적인 관리와 감시가 이루어지고 이전보다는 좋아졌는데, 감시 체계가 투명해지는 것만이 가혹행위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이다.

지금은 많은 보도로 인해 많이 완화되었으나, 군대가 아니라 경찰 조직인 의무경찰도 당시에는 가혹행위가 매우 심했었고, 심지어 구청과 시청에 복무하는 공익근무요원마저도 가혹행위 문제로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었다.

또한, 이전에도 군대 괴담이나 몇 가지 확인되는 소스로 비슷한 사건[6]이 존재했으나 이전 사건들은 그대로 묻히고 개선의 여지조차 없었던 반면 이번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100% 완벽하게 개선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지휘관들이 감시를 철저하게 하는 부대일수록 구타 및 가혹행위가 점차 줄어드는 형태였다. 즉, 수백 명이 함께 생활하는 중대나 대대에서 이전처럼 대놓고 구타하거나 가혹행위하는 건 어렵게 되었지만 지휘관과 간부 감시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독립 부대에서는 가혹행위 및 구타는 여전히 이루어졌다. 대부분 악질적인 구타 및 가혹행위 사고가 벌어진 부대를 종합해 보면 대부분은 상급 지휘관들의 감시가 이뤄지기 힘든 독립 부대다.



[5] 기타
사건 발생 초기 국방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망자 시신을 한 곳에 안치하지 않았다. 국군수도병원(성남시), 국군양주병원(경기도 양주시)[8], 국군일동병원(포천시, 현 국군포천병원), 국군벽제병원(고양시, 현 국군고양병원) 등 군병원 4곳에 분산수용하였다. 이는 유가족들이 모이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국군양주병원의 경우, 사건 당일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가 모여있었기에 비무장 단독군장 차림의 기간병들을 내세워 유가족들의 병원 본관동 진입시도를 봉쇄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건사고인 '  530GP 사건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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