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지식백과사전

[ 요리연구가 ] - 백종원 본문

카테고리 없음

[ 요리연구가 ] - 백종원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0. 1. 2. 00:00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요리연구가인 , " 백종원 "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요리연구가, 요식기업인, 학교법인인이자 유튜버이다.

 

 

 

[2] 상세

'요리하는 CEO'로 불릴 정도로 요리업계에 한평생을 바쳐온 기업인. 현재 가장 인기있고 신뢰도가 높은 요리관련 유명인으로 꼽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셰프 취급을 하기도 하는데, 본인 스스로 자신은 요식 사업가 내지는 요리연구가이지 셰프가 아니니 그렇게 부르지 말고 그냥 '사장님'이나 '대표님' 정도로 불러달라고 한다. 다만, 이는 백종원 본인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그의 본업이 셰프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셰프 문서에도 나와 있지만, 저 호칭 자체가 레스토랑의 총주방장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은 셰프들이 자주 노출되고, 점차 고급스러운 조리와 맛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셰프를 마치 '요리의 고수'에 대한 경칭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총주방장 직책을 맡고 있지 않으면 셰프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 백종원의 사진이 나와 있는 더본코리아 프랜차이즈 음식점 포스터에서는 "외식경영 전문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만, 백종원 또한 셰프라고 부르는 이도 많다. 셰프들도 바닥부터 몇 년을 일해야 셰프라고 불러야 하는지 애매하고,현역 셰프들끼리도 "대체 셰프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셰프들은 조리과가 있는 학교에 특강 나갈 때, 조리 전공 학생들이 백종원도 셰프냐고 물어볼 때, 오너셰프라고 답한다고. 유명 셰프인 레이먼 킴도 백종원은 경영만 하는 게 아니고 본인이 직접 연구하고 개발한 요리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셰프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또한 백종원은 요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요리사보다는, 외식 사업가로서의 감각과 아이디어에 더 특화되어 있다. 무엇이 히트를 칠지, 어떻게 하면 사업이 더 확장될 수 있을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행할 때에 있어서 요리의 맛이나, 분위기 등의 부가적 요소들을 파악하여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러한 그의 사업가적 면모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현재 출연 중인 골목식당이다. 이외에도 백종원의 푸드트럭, 고교분식왕 등등의 프로그램도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고 분기마다 백종원의 장사이야기라는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해 사장님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홍콩반점0410, 본가, 미정국수, 역전우동을 비롯한 여러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가 운영하는 음식점의 종류는 고기류부터 중식, 한식, 분식 등은 물론 카페 '빽다방'까지 거의 모든 범위를 아우른다. 대표적으로 대패삼겹살과 우삼겹을 상표로 등록했고, 그 외에도 친숙한 음식들을 다루면서 실력과 상업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2013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게 성공한 사업가다.

15세 연하의 배우와 결혼했다는 점과 경영하는 음식점들 대부분이 인스턴트 음식을 주로 다루는 체인점이라 이래저래 의문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2015년부터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한 것을 계기로 방송에 진출. 그리고 Olive TV의 한식대첩 시즌2, 한식대첩 시즌3의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요리 및 식재료 지식에 해박함을 과시하면서 일명 '백'과사전으로 이미지를 완전히 쇄신하여 뛰어난 능력을 입증해냈고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구수함과 친근감에 타고난 예능감까지 선보이며 대세 예능인으로까지 발돋움했다. 처음에 <힐링캠프> 소유진 편에서 잠시 나왔던 것을 계기로 이경규가 이덕화 편에서 술안주 만들어주는 요리사 역으로 출연하게 해주었고 그 뒤에 그 예능감을 보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게 되었다.

2016년 이후에는 관련 서적들도 1위를 휩쓸었고, 2017년에는 집밥 백선생으로 방송 MC 브랜드평판 1위까지 올라갔으며 그해 S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더 나아가 2018년에는 SBS 연예대상 후보로까지 거론되었다.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성공했음에도 창업과 자영업자들이 귀담아들을 현실적인 노하우를 많이 설파한다. 방송으로 이름을 타기 전인 2013년부터 자영업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이는 더본코리아 유튜브 채널의 백종원의 장사이야기에 업로드되었으나, 백종원의 요리비책으로 채널이 리뉴얼되며 기존의 영상은 삭제되고 편집본으로 순차적으로 업로드 중이다. 자영업을 염두하고 있다면 한번쯤은 봐둘 만한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또한 식당을 위한 대용량 레시피집인 '백종원의 식당 조리비책'(2009)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대용량 요리책은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고 귀한 자료이다. 이 대용량 조리법은 백종원이 유튜브 컨텐츠로 활용하기도 했다.

2019년 3월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요리 만화를 내게 되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나온 내용으로 보인다.

 

 

 

[3] 생애

1966년 충남 예산군에서 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상경해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엔 잠시 서울특별시 장한평에 위치한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 중개업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화의 희열에서 어렸을 적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만석꾼이었던 증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영향인지 장사꾼 기질이 어렸을 때부터 있다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9살 때에는 산에 놀러갔다가 본 버섯 농장을 보고 별다른 투자도 안 한거 같은데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꿈을 버섯 농사로 정한 적도 있었고 초등학교 4학년때는 캔이 아닌 병에 음료가 나올 시절에 음료수 병을 보고 저게 돈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학교 리어카를 빌려 오락 시간과 보물찾기같은 시간을 다 건너뛰고 공병을 리어카 6개 분량을 모아서 고물상에 갖다 팔아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리고 5학년 1학기까지 이렇게 돈을 벌었고 방위성금으로 다 냈다고 한다. 5학년 2학기부터는 공병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주변에 나서 할 수가 없었다고한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 입시가 끝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친구의 형이 중고차 장사를 하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로 호객 행위를 시작하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 호객 행위가 너무 단순했으며 막상 이렇게 손님을 불러와도 안에서 딜러들이 설명을 너무 못하고 어떤 차를 원하는지 바로 알아채지 못해서 본인이 직접 알려줘도 딴소리를 하면서 손님을 놓치는게 답답한 나머지 직접 딜러를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딜러로 일하기 시작한지 40분만에 차를 파는데 성공하고 며칠만에 차를 6대나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두번째로 차를 사간 손님이 미터기 조작과 사고 경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모르고 팔았던 백종원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다고 한다. 거기에 충격을 받아서 자동차를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거기까지는 의욕이 없어서 더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사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빨리 그만둔 이유는 다른 구매자들도 따지러 올까봐 그랬다고 한다.

처음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요식업에 뛰어든 것은 것은 대학생 때로, 연세대학교 1학년 때 아르바이트삼아 일한 압구정동 호프집을 한 달만에 인수한다. 이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는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서. 이때 상권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주변에 치킨 가게가 없으니 배달이나 포장 판매를 하는게 좋다고 생각해 주인 할머니에게 권유를 했지만 할머니는 썩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였고 이를 설득해서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서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을 받은 끝에 핸드메이드 전단지를 만든다. 근데 전단지를 돌리고 싶었는데 당시 아파트의 경비가 삼엄해서 경비에게 치킨을 돌리면서 전단지를 돌릴 수 있게 허락을 받아 아파트에 전단지를 돌렸고 돌아오자마자 전화가 많이 와서 이때 장사의 맛을 느꼈다고 한다. 정작 이때는 이렇게 반응이 빠를 줄 몰라서 준비가 아직 안된 상황이라 곧바로 배달을 시작하지는 못했다고. 그러다 얼마 안가서 일이 너무 많아지니 치킨 튀기는 기계도 5대까지 늘렸지만 할머니가 병을 얻고 가게가 잘되니 힘들다는 이유로 가게를 내놓기로 결정했고 이걸 아쉽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가게를 직접 하지 않겠냐고 할머니가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근데 돈이 통장에 그렇게 많이 없어서 돈이 어딨어서 가게를 인수하냐니까 할머니가 지금 가진 것 만이라도 가져오면 내주겠다, 너는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가게를 백종원에게 넘긴다. 그렇게 잔금을 모두 갚으면서 가게를 완전히 인수하고 이후 3년간 가게 3개를 운영하며 15억 원대의 자산가가 되었으나, 백종원이 나이트 클럽을 인수하려던 것을 알게 된 가족이 기겁을 하고 반대 하는 바람에 학사장교로 지원하게 하였다고 한다.어머니는 첫 면회 때 "그간 행적을 모두 알고 있으니 꼼짝 말고 군 복무나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고. 결국 인수한 나이트클럽을 헐값에 넘기고 그 돈을 주식에 투자했으나, 부도가 나버렸다고 한다.

가족에게 쫓기듯 학사 14기로 1989년에 임관하고 난 이후에 처음에는 포병장교로 복무했지만 중간에 취사장교라는 전무후무한 직책을 만드는 업적을 달성했다.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사령부 편에서 요리대회 심사를 맡았을 때 밝힌 바에 따르면, 포병 관측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부대 BOQ에 올라오는 짬밥이 하도 입에 안 맞아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고 판단하고 그냥 취사반 일을 했다고 한다. 장교가 자기 임무 팽개치고 취사반이나 기웃거린다고 참모 장교한테 불려가서 조인트를 맞기도 했지만, 식당을 기습 시찰한 사단장님께서 밥맛을 보고는 백중위의 보직을 정식으로 인정해버리면서 취사장교가 되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참모 장교들의 대우가 180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군 제대 1년 전 간부식당의 운영을 맡아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담아주는 것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뷔페식으로 바꾸는 업적을 달성했다고. 명색이 장교인데다 음식 맛을 본 별들의 선택에 의해 조리사관이 된 만큼 사회로 치면 수석 요리사인 셰프 역할을 하면서 휘하 병력들에게 보조적인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백종원은 장교출신자 중에서는,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초, 전무후무, 그리고 유일무이한 보직인 '급양과장'으로 인정받아 보직했던 경력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4] 방송인으로서

일반적으로 인기를 끈 음식 관련 인물은 셰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백종원과 관련해서도 이에 대해 일류 셰프가 아니라는 식의 비평이 있었으나 사실상 그는 요리 연구가이자 사업가이다. 때문에 단순히 요리 스킬 자체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주방장들 못지 않게 뛰어나기는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한국에서 일류급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할 수 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내 인기를 얻은 마리텔에서는 요리를 직접 하며 소개해주는 일이 많은 데다가 그 방법도 대중들의 편의에 맞춘 방식이다 보니 이런 부분이 더욱 부각된 측면도 있다. 근데 사실 본질적으로 생각해 보면 굳이 일류여야할 필요는 없다. 마리텔이 일류 데려다가 방송한다는 콘셉트도 아니고. 어쨌든 그의 핵심은 요리 실력이 아니라, "요리에 대한 실용적 지식"이다. 한식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유럽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고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단순히 "맛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전 세계를 기준으로 놓아도 일류급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음식 사업도 성공하였고 동시에 방송인으로서도 성공한 인물이다.

2014년 전후로 방송에 이름을 알린 여러 요리사/요리연구가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화려한 음식보다는 쉬운 음식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만들기 어렵고 화려한 요리도 하라면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쉽고 싸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다. 본인이 운영하는 음식점들 역시 저렴한 가격 안에서 최대한 배부르고 맛있는 한 끼가 될 수 있는 메뉴 위주이며,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요리들 역시 주 재료 위에 설탕 2국자, 치즈 3스푼, 세로로 썬 파 이렇게 간단한 재료들을 거침없이 뿌리는 간단한 요리법으로 순식간에 싸악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다. 덕분에 마리텔 방송을 기점으로 자취생, 백수, 솔로, 주부, 6~70대 중장년까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층에서 남녀노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가 방송에서 선보인 레시피들은 커뮤니티나 블로그, SNS 상에서 한 번씩은 만들어봤다는 글들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5] 유튜버 활동

대화의 희열에서 세계의 한식 레시피 공유를 위해 유튜브 진출 계획이 있다고 밝혔는데, 동년 6월 10일에 '백종원의 장사이야기'를 업로드하던 기존의 더본코리아 유튜브 채널을 백종원의 요리비책으로 리뉴얼하였다. 유튜브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요리 레시피에 잘못된 정보가 자신의 장모님도 낚일정도로 많아 직접 수정하는 차원에서 개설했다고한다.

 

구독자 명칭은 팀원이다.


개설한 지 한 시간만에 10만 구독자를 돌파했으며, 개설 12시간만에 구독자 약 60만 명을 달성했고, 6월 13일 13시 19분 첫 영상 업로드 이후 2일도 지나지 않아 구독자 100만 명을 달성하였다.

6월 14일에는 이틀만에 100만 명을 돌파한 것에 감사하는 영상을 업로드했다. 골목식당 원주 미로시장 편 촬영 중에 찍은 거라 정인선도 깨알같이 등장한다. 폭발적이었던 구독자 증가세는 120만대에 이르러 차츰 진정되는 모양새이다. 

채널 개설 3주만에 100만의 구독자를 추가하여, 200만 구독자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개설 2주 만에 단 16개의 영상으로 총 조회수 2000만을 넘겼다.

2019년 11월 5일 기준 구독자 수는 292만 명으로 300만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한국 유튜브 채널 중 66위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300만명을 돌파했고 관련기사까지 나왔다

 

 

 

[6] 별명

백설탕
- 슈가보이와 비슷한 원인으로 생겨난 별명. 또 우연히 백설탕과 맞아 떨어진다. 하얀색 셰프복을 입고 나온 날 이 별명이 흥했다. 백종원 본인은 날씬해보인다며 검은색 셰프복을 선호해서 간혹 흑설탕 바리에이션으로 불리기도 한다.
방송천재
백주부
백노키오
- 초아, 예코치가 백종원의 방에 왔을때 시청자들과 하나가 되어 놀려준 것이 계기가 되어 생겨났다.
백구라
- 설탕이 들어갔는데 설탕 안넣고 배를 넣었다고 하거나, 고기를 넣었는데 고기를 넣지 않았다고 하거나. 이에 예정화는 고기맛이 난다며 신기해했다. 또한 초아한테는 두부와 깨, 설탕, 땅콩 버터, 물을 넣어서 만든 가짜 콩국물을 진짜로 콩을 불려서 만들었다고 속였다. 위에 백노키오와 동시에 나온 연계 별명
백도둑, 백길동, 백서리
- '칼로리 폭탄 토스트'를 만들면서 집에 땅콩버터가 없다고 이거 하나만을 하기 위해 땅콩버터를 사는건 아니라며, 친구집 찬장 구석에 가면 안 쓰는 땅콩버터를 슬쩍 가져오면 된다고 말해 시청자들이 붙여준 별명
백둥지둥
- 마리텔 파일럿 방송 후반부에 간짜장을 만들려고 춘장을 볶다가 태우자 당황하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이 붙여준 별명

 

 

 

[7] 관련 프랜차이즈

2016년 기준 백종원이 보유한 프랜차이즈는 19개로 이는 놀부(13개), 롯데(11개)보다 더 많다고 한다.
모든 프랜차이즈의 공통점이 있는데 단무지를 자체 생산하는지 단무지가 엄청 얇게 나온다는 점이다. 거의 종이 수준으로 두께가 얇다.

상호명 뒤에 숫자 '0410'를 붙은 브랜드가 제법 있는데, 이것이 백종원 아들의 생일(4월 10일)을 가리킨다는 썰이 있으나, 미정국수나 홍콩반점 같은 브랜드는 아들 출생을 넘어서 소유진과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0410이란 숫자를 상호에 붙이고 있었으므로 아예 말이 안되는 소리이다. 별 이유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붙이는 것이라 한다. 방송에 출연하던 초창기에 본인이 얘기하기론 당시의 자기 휴대폰 번호 뒷자리가 0410이었다고 말한 적은 있다. 대화의 희열2에 출연했을 때도 핸드폰 뒷번호라고 답했다. 그냥 상호명만 넣자니 그럴싸하지 않아서 자기 핸드폰 번호를 쓴거지 무슨 의미가 있는건 아니라고. 아마 상호명이 중복될 때 우회하는 방책으로 쓰는게 아닌가로 추측된다.

 

 

 

지금까지 요리미식가인, ' 백종원 ' 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