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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 한비야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1. 7. 14. 17:38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작가 ' 한비야 ' 에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생애
1958년생으로 초명은 '한인순'이다. 훗날 세례명인 비아(Pia)를 본명으로 삼아 개명하여 한비야가 되었다. 저서로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4권, '바람의 딸, 우리땅에 서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건 사랑이었네', '1그램의 용기' 등이 있다.

1986년 홍익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유타 대학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 학위를 받고 월드 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이 되었다. 2004년 한국 YMCA 선정 젊은 지도자상을 수상하고 2005년 환경재단이 선정한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었으며, 유학을 가기 전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35세가 되던 해, 국제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라 한국지사의 일을 그만두고 7년 간의 오지 여행에 올랐다. 이때 돌아다닌 거리를 계산해보니 얼추 지구 3바퀴 반 정도 되더란다. 약 14만 km. 하루에 평균 50km 이상을 돌아다녔다는 소리다. 그러나 이건 본인의 주장이고 실제로 그녀가 버스를 탔는지 비행기를 탔는지는 개인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위의 체험을 바탕으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시리즈 4권을 냈다. 비행기를 거의 타지 않고, 호텔에서 숙박하지 않고 대부분 현지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현지문화 체험에 중점을 두었다. 진위여부는 분명치 않으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반군에게 총살당할 뻔했다든가, 인도에서 멋모르고 밤늦게 릭샤를 타고가던 중 뒷골목으로 납치될 뻔했으나 가까스로 뛰쳐나왔다든가, 아르헨티나에서 성추행을 당할 뻔했다든가 등등 위험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도 가감 없이 묘사하였다. 그리고 완벽하진 않으나 곤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어느 정도 설명하였다.

이 책들이 상당한 인기를 얻은 덕분에 한동안 한국에 배낭여행, 오지여행 붐이 불었고, 여대생들이 존경하는 여성 1위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2009년 7월까지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외국 전문 대학원 플레처 스쿨에서 인도지원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한국 나이로 60세에 결혼했다. 남편인 네덜란드인 안토니우스 반 주트펀과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 북부 헤라트의 한 긴급구호 현장에서 동료로 만나 멘토, 친구, 연인 관계를 거쳐 만난 지 15년 만인 2017년에 결혼했다. 결혼소식은 다음해인 2018년 1월에야 알려졌다.



[2] 저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2,3,4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건, 사랑이었네

1그램의 용기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3] 도전정신
늦은 나이에 오지 탐험을 한 여성 모험가로 한때 여대생들이 롤모델로 뽑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모험 형식의 여행 방식은 상당히 시대를 앞서갔다. 한국은 1980년대 말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1990년대엔 여행은 관광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일 때 모험 형식의 배낭 여행을 한 것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관광 VS 모험은 논쟁거리이고, 관광편에서 볼 때 그녀의 여행은 너무 위험해 보여 비판을 받는다.



[4] 외지에서의 민폐 및 위법행위
가장 큰 비판은 위험하고 심각한 민폐 및 불법 행위들을 마치 여행의 맛인 듯 미화한다는 것이다. 탈레반 군사작전 지역에서 본인이 내키는 대로 사진을 찍다가 잡혀서 곤혹을 치를 뻔하거나,[2] 엄연히 불법행위인 밀입국을 여러 번 했다. 한비야의 여행은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게 원칙인데 온두라스캄보디아[3] 등은 비행기로만 입국이 가능하다. 밀입국은 붙잡힐 경우 감옥에 갇혀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법행위이다.

또한 마약 체험기와 더불어 그때 느낀 환각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는가 하면[4], 중국에서는 자기 자전거를 도둑맞았다고 자신도 남의 자전거를 훔쳐오고,한복동 아프리카에서 경비행기를 탈 때 난기류로 비행기가 요동쳐서 미국인 승객들이 심하게 구역질하며 괴로워하자 그들을 약해빠진 미국인이라고 흉보며 환호성을 지르고,[5] 인도에서 남자 마사지사에게 거품 마사지를 받다 기분이 좋아져서 가슴 마사지도 받는 등[6] 상식적으로 이해 및 납득이 불가능한 갖은 행동들을 여행기에 수록하였다.

여행자 한비야의 마음가짐은 '결국에는 여기나 저기나 다 사람 사는 곳이다'로 치안, 위생, 환경,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직접 그 곳에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저자가 가진 규칙이나 도덕에 대한 기준이 상당히 가변적이고 모순이 많다.

법에 개의치 않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다니고 행동하는 행태를 보면 인격에 문제가 있다. 앞서 언급한 미국인에 대한 조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자유주의의 대원칙은 타인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이 허락된다는 것인데, 상기한 한비야의 행동이 그러하던가? 이런 행동들은 자유주의도 뭣도 아닌 그냥 이기주의인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종종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고 19세기 중반의 미국에서도 한때 이런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초월주의 문학을 이끌었던 역사가 있음을 생각하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한 대략의 이해는 할 수 있다. 허나 만약 그러하다면 한비야 본인은 법을 어기고서라도 본인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 되나, 같은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 일반인이 보고 따라할 행동은 절대 아니다. 멋지게 포장해줬지만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걸 신념 운운하며 포장할 수 없다.



[5] 위험하고 왜곡된 여행정보 공유
실제로 그녀를 동경해서 여행 방식을 따라했다가 강도를 당했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인도에 대한 판타지를 쓴 류시화와 더불어[7] 현지에선 "류시화나 한비야 따라하다가 신세 망친 사람 많이 봤다"는 말이 나오며, 한비야의 책에 기술된 정보 중 실제로는 위험한 것이 많아 비판을 받는다. 한비야는 저서에서 여행 가이드북처럼 각 권 말미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기술하였다.[8] 정보 공유 자체야 나쁜 일이 아니고, 책이 출판되어 나올 당시에는 해당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방법이 생각보다 적었다. 한비야 자신도 여행 정보는 영문판 론리플래닛을 많이 참조했다고 하지만 가이드 북에도 없는 정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였다. 당장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해서 탈레반에게 끔살당할 뻔한 이야기도 당연한 이야기에 틀림이 없다. 1996년 첫 책이 발간된 당시에 독자들이 한비야 책을 읽고 외국 여행, 특히 배낭 여행에 관해 환상을 품고 잘못된 인식을 형성하기에 충분했음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금까지 작가 ' 한비야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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