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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투기 무술 ] - 가라테 본문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격투기 무술 ' 가라테 ' 에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空手道 / Karate
가라테(공수도)는 중국 남권에서 유래하여 오키나와에 정착, 다시 일본 본토에 상륙하게 된 무도이다. 류큐 왕국의 토종 무술과 중국 무술이 융합된 오키나와 테라는 무술이 원류로, 주먹 공격, 발차기 공격, 무릎 공격, 팔꿈치 공격, 그리고 유술기가 혼합된 입식 타격 무술이다.
가라테의 유파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수련자 수가 많은 유파는 송도관, 강유류, 사동류, 화도류와 같은 전통 가라테 유파이다. 이 네 유파의 전통적인 쿠미테(組手, 대련) 방식, 그리고 이 네 유파가 가입된 스포츠 가라테 단체인 '세계가라테연맹(WKF)'에서의 쿠미테 방식은 공격하기 직전에 멈추는 슨도메라는 규칙을 채택한다. 이에 실전성을 이유로 반발해 직접적인 타격을 허용하는 극진회관은 풀컨택트 가라테를 발전시켰지만, 안전성을 이유로 얼굴은 주먹으로 가격하지 않는 룰이 생겼다. 이에 또 다시 반발해 얼굴에 보호대를 차고, 얼굴 가격은 물론 관절기까지 허용한 대도숙 공도라는 이름의 무술이 생기기도 했다. 대도숙 공도는 처음에는 극진공수도의 유파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너무나 달라져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찾았기에 아예 독자적인 무술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발음하기 편해서인지 '가라데'라는 표기가 말로도 글로도 널리 쓰이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가라테'가 맞는 표현이다.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옮기면 '카라테'라는 발음에 가깝고 현재 한국 WKF식 가라테 단체인 대한카라테연맹[2]에서는 카라테를 쓰고 있으니 '카라테'로도 들어올 수 있다.
가라테는 뒤의 도(道) 자를 생략한 명칭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아이키도처럼 '가라테도'라고 불러야 '공수도'에 대응되는 풀네임 명칭이 된다.
[2] 기원
17세기 일본 사쓰마번의 침략에 맞서 류큐 왕국(지금의 오키나와) 무인들은 중국 남권을 차용한 唐手(당수), 말 그대로 중국 무술(당나라 무술)을 수련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테(手)의 모체다. 류큐어로는 티 또는 디라고 한다. 즉, '테'는 일본어식 발음이다.
당시 류큐는 상씨 왕조 때부터 개개인의 무기 소유가 금지됐었기 때문에, 외적에 맞서 싸울 방법이 무술밖에 없었다. 1625년에 명나라 사람 진원빈이 류큐에 와서 자국의 권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고[3] 이것은 가라테 역사에서 꼭 다루어지는 사실의 하나이다.
한편, 중국 당나라를 가리키는 '唐'자도 히라가나로는 '가라(から)'라고 쓰는데, 여기서의 '가라테(唐手)'는 '당나라의 권법'이라고 풀이된다. 일본의 무술로 정착되면서 이후 일본은 '당'자가 중국 당나라를 연상시킨다며 '唐'자는 폐기되고 '空手(공수)'로 통일되었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가라테 카타(型)도 중국에서 왔다.#1#pdf 물론 류큐인들이 이를 개량, 발전시켰음은 물론이다.
또한 중국 남파 소림권에서 유래한 중국 남권, 그 중에서도 영춘백학권[4]이라는 권법과 굉장한 유사성을 띤다. 교본을 비교해 봐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인 기술 체계도 그렇고 아예 특정 카타(形)와 동작 및 순서가 같은 투로도 존재한다. 가라테의 기본인 삼전(三戰)서기나 삼전카타는 남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형(步形)이다.
때문에 중국에선 중국무술로 여기는 이들도 많고, 태권도도 비슷하다면서 중국무술이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2007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 태권도 대회에선 아나운서가 대놓고 "태권도는 중국 것이다. 중국무술 가라테를 일본이 일본 것이라고 하는데, 태권도도 한국이 자기 것이라며 왜곡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3] 어원
원래 오키나와에서 명칭은 단순히 테(手)[5]였다고 한다. 슈리 지방에서 성행하는 건 슈리테(首里手), 나하 지방에서 성행하는 건 나하테(那覇手) 하는 식으로 지방에 테(手)를 붙여 부르곤 했다.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오키나와테(沖縄手), 혹은 도테(唐手, 당수)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당(唐)이라는 말은 당나라의 당자 이기도 하고, 중국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 내에서 중국에 대한 적대감정이 강해지자, 당(唐)자를 '도'로도 읽을 수 있지만 '가라'로도 읽힌다는 점에 착안, 당(唐)자를 떼내고, 같은 '가라'로 읽히는 공(空) 자를 붙여서 가라테(空手,공수)라고 부르게 된다. 일본어에서 '가라(から)'는 '비어 있다(空)'는 뜻이고, '테(て)'는 '손(手)'이란 뜻으로, 가라테(空手)는 곧 맨손 무술을 의미한다.[6]
그리하여 70년대까진 국내에서도 당수도라는 명칭을 태권도와 혼용해서 쓰고 있었으며, 북미 등지에선 아직도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당연하지만 이는 태권도가 가라테(당수도)를 모체로 재창작 되었기 때문이며, 초기 태권도 창설시 정치적 혹은 개인적 이유로 태권도와의 통합을 거부한 가라테 원로들이 자신의 도장을 유지하면서 가라테의 한자음을 그대로 당수도로 보급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태권도와는 다른 한국화(라지만 역사왜곡, 즉 한국 전통무술로 포장한)를 추구하며 "당수도"로 홍보하거나, 혹은 이름도 갈아탄 "수박도" 같은 경우도 있다.
(국제당수도협회 마크)
여담으로 일본에서는 당수도(唐手道)라는 표기는 매우 마이너한데, 일본에서는 '당수술(唐手術)'에서 급격히 '공수도(空手道)'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전통 당수를 한다는 몇몇 단체가 당수도 표기를 쓰고 있고, 가라테와는 별 상관 없는 대만의 중국무술 단체 중에 이런 표기를 쓰는 곳이 있다.
왕우 주연 영화 용호투[7]에서는 "당수니까 중국무술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동북공정을 펴기도.
유명인들 중엔 척 노리스와 신시아 로스록이 당수도를 수련했다.
[4] 일본 지배기와 무기술의 변화
본시 류큐 왕국 주민들이 사쓰마 번의 침공 및 무기금지령에 맞서 수행한 것으로 16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미 상씨 왕조 때에 내전을 두려워해 전 국민의 무기 소지를 금지했고, 심지어 군인들조차 무기를 왕궁 무기함에 거치해놓고 잠갔을 정도라고 한다. 때문에 싸움이 나거나 들짐승 등의 공격을 받았을 때 맨몸으로 싸울 수 밖에 없어, 류큐인들은 호신을 위해 더욱 가라테 수련에 열심이었다.
사쓰마 번이 점령한 시기에도 일체의 무기를 금지했기 때문에, 호신 겸 사쓰마로부터 독립하려는 열기가 담긴 무술로 수련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이 곧 집단적인 가라테 수련도 금지시켜서, 수련도 일본 무사들의 눈을 피해야 한 까닭에 비밀리에 수많은 유파가 집집마다 다르게 전수되었다. 이는 류큐 왕국이 정식으로 일본 제국에 병합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병합 이후 무기 금지령은 해제됐지만, 단체로 모여 무술을 연마하는 행위는 여전히 반란의 전조로 규정됐다.
그 때문인지, 가라테에는 원래 무기술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데, 그 무기들이 대부분 무기같이 안생긴 것들이 대부분이란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봉이나, 톤파, 쌍절곤같이 평상시라면 농기구의 일부로 보이기 쉬운 것들. 심지어 낫을 무기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또한 전통 가라테 수련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카타 수련의 경우도 카타 동작이 원래 무기를 갖고 수련하는걸 염두에 둔 동작이거나, 무기술에 근원한 경우가 많다. 즉, 맨손으로 무기를 들고있다고 가정하고 훈련하는 모습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대표적인 것이 평안 2장으로, 원래는 봉술에서 유래한 카타다.
[5] 일본 본토에서의 발전
류큐 제도가 일본의 정식 영토(내지)로 편입되기 전까지 류큐인들에 대한 차별은 극심했고 가라테에 대해서도 탄압이 심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900년대부터 일본이 군사정권화 되면서 검도와 유도 이외의 무술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이때 오키나와의 가라테 역시 주목을 받아 일본에 상륙하게 된다.
일본에 가라테를 전파한 사람은 후나코시 기친(船越義珍, 1868 - 1957)이었는데, 어렸을 때 몸이 허약해 부모가 열심히 운동을 해 몸을 단련하란 의미에서 스승을 찾아 주었다고 한다. 스승과 후나코시의 집은 거리가 20리나 되었는데, 수련이 금지되어 있어 밤에 몰래 수련하기 위해 제자는 한밤중에 10리를 달려가고, 스승도 10리를 달려와서 정확히 중간의 공동묘지에서 만나 수련했다고 한다. 만약 하루라도 빠지면 상대가 10리를 헛수고해서 달려온 게 되기에, 태풍이 오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심지어 아파도 제자는 스승을 위해, 스승은 제자를 위해 단 하루도 수련을 빼먹지 않았다는 감동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후나코시는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인들의 무술이 인정받게 되고자 가라테를 일본에 전파하게 되었고, 1916년부터 본토에 진출하였다. 이때 한창 중국과 전쟁을 치루고 있었기 때문에 '당(唐)'자를 빼라는 일본 측의 주장에[8] 1929년 이름을 공수도(空手道)로 바꾸게 된다. 그리하여 당시 일본의 국민 스포츠이던 유도 강도관 도장에서 수련시간 외에 연구회가 처음 인정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승급체계나 도복 등, 유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그 이후 가라테는 쭉 발전하여 일본에서 검도, 유도의 뒤를 이어가는 주류 무술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는 일본의 대표적인 타격계 무술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어느 정도 유술기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업어치기 후 안면에 정권이라든가.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무술의 원형은 타격기와 유술기가 혼합된 형태였다. 일본 무도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무기를 든 상태를 상정하며 킥으로 원거리 공격을 보조했다. 또, 근접 상태에서는 펀치가 아닌 유술기로 상대를 넘어뜨리는 형태였다. 지금은 유술로 대표되는 유도의 경우도 현재의 유도로 정립되기 이전에는 주먹과 발 기술이 있었으며, 심지어 스모조차 과거에는 타격기와 유술기 등을 가진 종합 무술에 가까운 형태였다. 사실 대부분의 무도는 태생을 따라 올라가면 모두 무기+유술+타격이 혼합된 형태에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각각이 하나의 종목으로 자리잡고 스포츠화 되면서, 다른 무술과의 차별화를 위해, 혹은 스포츠화를 위해 타격이나 유술 한 쪽으로만 발달하게 된 것이다. 가라테에 손 기술보다 발 기술이 훨씬 많고, 카타에 유술기를 상정한 동작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이러한 태생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테의 유술기를 볼 수 있는 영상으로, 평안4(平安四段)이라는 카타의 동작을 응용한 기술이다. 전통 유파의 대표로 불리는 쇼토칸에서도 기본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카타이며, 유술기가 완전 금지된 극진의 각 분파에서도 동작 자체는 가르쳐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친이 저술한 가라테 교범에도 유술기 항목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
품새속 가라데 동작들의 모습이 현대의 종합격투기와 기타 유술기 무술들의 모습들과 유사한것을 알 수 있는 복원 영상. 물론 영상에 예시로써 등장하는 모든 선수들이 가라데 기술을 시전하고 있다고 판단해선 안되겠지만, 기존의 오키나와 테의 실전성과 유술기의 비중을 가늠할 수 있는 영상이다.
사실 태평양전쟁 이전에는 일본 내에서 가라테의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았다. 유도가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제압하는 신사적인 전통무도라는 이미지가 있는 반면, 가라테는 깡패들이나 수련하는 싸움이란 선입견이 강했다. 60년대에 만들어진 가라테 영화에서도 제목을 무도로서의 가라테가 아니라 그냥 공수치기라고 부를 정도였다.[9] 따라서 가라테 수련자들은 일본을 떠나 미국, 러시아, 브라질 등의 해외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가라테가 온전히 일본 무술로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이런 해외 수련자들 덕에 '외국에서 유명한 일본 무술'의 이미지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전통 가라테를 뿌리로 두고 있는 무술이나 격투기가 많다. 단순히 영향을 받았거나 이런 기술을 채용했다 정도가 아닌, 발전 계보상으로 보면, 대표적으로 태권도가 가라테에서 파생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한 무술이고, 룰과 커리큘럼을 수정한 극진공수도와, 이 극진공수도에 다시 룰을 수정해서 발전시킨 대도숙 공도와 무에타이의 요소와 결합시킨 킥복싱 등도 있다. 그 킥복싱에 다시 새로운 룰을 추가한 슛복싱도 따지고 보면 가라테의 증손자뻘 되는 셈. 그 사이사이의 과도기에 있는 비교적 덜 유명한 무술이나 단체를 포함하면, 훨씬 수가 많아진다. 물론 무술이나 격투기라는 게 룰 하나만 수정해도 완전히 다른 종목으로 바뀌며, 가라테 역시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니고 나름대로의 발전을 거쳐온 만큼, 이들이 가라테와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계보가 그렇다는 것이다.
[6] 해외 전파
현재에는 일본의 주류 무술이다. 그러나 정작 일본 국내에서 가라테는 다른 전통 무술과 비교하자면 뿌리가 약한 편이다. 이는 가라테가 유난히 분파가 많은 것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본래 일본의 것이 아닌 가라테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원인으로 추측된다. 이렇다보니 5,60년대 일본 영화에선 유도 고단자는 정의롭게 나오고 가라테 고단자는 악당으로 나오는 게 허다했다고 한다. 그래서 가라테는 유도의 도복과 승단체계를 도입하고, 이름까지 바꾸는 등 '일본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하여 한국인도 가라테에 입문한 사람이 많게 되었고, 일본에서 뿌리가 약하다 보니 오히려 해외 진출이 활발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라테는 해외에서는 "일본 무술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까지 스포츠 ' 가라테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