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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 - 김민종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0. 11. 30. 00:44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가수 ' 김민종 ' 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대한민국 가수  배우.

가수와 배우 양쪽에서 엄청난 인기를 자랑한 원조 멀티 엔터테이너로, 대표적인 90년대 아이콘 중의 한 명이자 미남 톱스타였다. 안양예고-서울예술대학교를 졸업했다.

 

 

 

 

[2] 연기활동

정식 데뷔 전에는 광고모델로 업계에 얼굴도장을 찍다가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로 데뷔했고, 1989년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처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가수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는데, 드라마만 나왔다 하면 히트를 쳐서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라고 불렸다. <느낌>, <머나먼 나라>, <미스터Q>, <수호천사> 등의 숱한 드라마에서 당대 최고의 미녀 스타들과 호흡을 맞춰 드라마를 대히트시키고 OST까지 직접 불러 대히트시켰다. 특히 김희선과는 <머나먼 나라>, <웨딩드레스>, <미스터Q> 세 작품에서 주연으로 만나 커플로서 찰떡궁합 콤비를 과시하여 90년대 드라마 남녀 캐스팅 1순위였다.[6] 큰 키와 이국적인 외모는 당시에도 흔치 않은 마스크였고 80년대 말 ~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여러 하이틴 스타들 군단의 일원으로 톱가수로서의 인기까지 더해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톱배우로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결혼한 배우 이승연과 6년 넘게 공개 열애를 하며 1990년대 대표적인 톱스타 커플이었으나 2001년에 결별했다.

드라마와는 달리 영화쪽으로는 영 풀리지 않았는데, 데뷔 초에 조연으로 출연한 영화들이 나름 성공을 하고 인지도를 쌓아가다[7][8] 인기 스타가 된 이후 찍은 영화 <귀천도>로 일약 주목을 받았다.[9] 하지만 그 뒤로 찍은 영화는 줄줄이 망했어요. 솔직히 나온 영화들이 꽤나 막장급이었다. 박찬욱 초기작인 3인조는 그렇다쳐도, 제목부터가 뭐야 이거? 소리가 나오는 마지막 방위[10]... 홀리데이 인 서울은 왕가위 영화 기법 표절작이라고 흥행과 같이 평도 망했고, 이후로 나오는 이것이 법이다, 패밀리, 나비, 낭만자객.. 줄줄이 흥행에서 연속 재앙이었다. 작품 보는 눈+운+감독[11]빨이 안 받고 흥행참패의 쓴 잔을 연거푸 마셨다. 진지한 정극 연기인 <나비>와 망가지는 연기도 불사하고 찍은 <낭만자객>을 연달아 찍었으며, 특히 <나비>의 경우는 흥행에 실패하면 연예계를 은퇴하겠다는 각오[12]로 작업에 임했으나... 그리고 희대의 영화 낭만자객에서 관객에게 큰 충격을 먹이고... 그뒤엔 충무로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는지 영화계에서는 제작자, 감독 그 아무도 찾지 않는 배우가 되었다. <나비>같은 경우는 본인도 매우 진지하게 작품에 임했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갱스 오브 뉴욕, 무간도, 선생 김봉두, 매트릭스 리로디드, 엑스맨2, 지구를 지켜라근데 이건 극장흥행 망했잖아, 그리고 살인의 추억이었다. 운이 정말...

힐링캠프 김민종 편에서 김민종이 직접 밝혔듯이 영화 <낭만자객> 이 자신의 연기 커리어의 향후 향방를 결정하는 중요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드라마와 음반에서는 항상 히트를 시키며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나 영화에서 항상 실패를 해온 김민종은 당시 하이틴스타의 틀을 벗어나 영화배우로서의 성공이 절실했다. 특히 영화배우가 몸값과 위상에서 드라마 배우를 추월해가던 2000년대 초반의 시기에[13] 만약 낭만자객이 흥행을 하면 하이틴스타가 아닌 제대로 된 배우로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톱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실패를 한다면 과거의 하이틴스타로서만 남고 배우로서는 클래스가 추락하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었다. 결과는?... 낭만자객은 전국 관객 90만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영화 자체가 혹평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그동안 터프가이 이미지에 눈에 힘주고 멋있는 캐릭터만 연기하던 김민종 또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하여 이미지를 구기고 2000년대 현빈, 소지섭, 강동원 등의 새로운 배우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그 후 김민종의 연기 커리어는 쭉 하락세를 걸었다.

2003년 KBS 주말 드라마 <진주목걸이>, 2004년 SBS 수목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 2005년 MBC 수목 드라마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에서 주연을 맡아 드라마 커리어는 이어갔지만 90년대 안방극장의 흥행 보증 수표란 말이 무색하게 시청률이 좋지 않았다. 2006년 tvN 개국기념 미니시리즈 <하이애나> 를 끝으로 원톱 주연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2008년 MBC 드라마 <천하일색박정금>, 2009년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2011년 SBS 드라마 <아테나> 등을 거치며 주연의 자리에서 확실히 내려오게 되었고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해 슬럼프를 겪었다.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복귀. 팬들의 기다림을 실망시키지 않았고, 완벽한 연기로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치게 되었다. 덕분에 미중년 컨셉으로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드라마에서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자신이 '신사의 품격'에서 맡은 최윤 변호사 역을 그대로 활용하여 차관우를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웃하려 제의를 하는 선배 변호사로 등장. 또한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성동일'과 인연을 맺은 자신의 캐릭터 '김민종'으로 분하여 2002년 나정의 결혼식 때 삼천포와 같이 축가 '너만을 느끼며'를 불렀다.

2015년에는 SBS 드라마 미세스 캅을 2016년에는 시리즈편인 미세스 캅 2에서 박종호 역할로 출연한다. 2017년, MBC 월화특별기획 투깝스에 조항준 역으로 특별출연. 또한 12월에 개봉한 신과 함께 죄와 벌에도 우정 출연하여 과거 인기 스타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2019년에는 SBS 드라마 배가본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 윤한기 역할로 출연하지만, 2010년 MBC 드라마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에 이어 두번째 악역을 맡았다.

 

 

 

 

 

[3] 가수 활동

1992년 솔로 1집 또다른만남을 위해 로 데뷔하여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신인으로서 이례적으로 바로 10위 안에 들며 가수로서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14] 그리고 1993년 솔로 2집 하늘아래서가 1위를 하고 크게 히트하여 락발라드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또한 솔로 1집 활동이 끝나가던 시기인 1992년 12월에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하나인 손지창과 함께 2인조 그룹 더 블루를 결성해서 투유초콜릿 CF송이자 더블루 1집 타이틀 너만을 느끼며 (1992), 손지창과 함께 주연을 맡은 드라마 느낌의 OST 그대와 함께 (1994), 더블루 2집 후속 친구를 위해 (1995)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듀엣 그룹으로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15] 정규 앨범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의 OST도 직접 불러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드라마 열정시대의 '내가 알고 있는 미소', 느낌의 '그대와 함께'[16][17] 드라마 머나먼 나라의 'Endless Love', 미스터Q의 '세상 끝에서의 시작', 드라마 사랑하세요? 의 '항상 그 자리에' , 드라마 수호천사의 '난 다를거야', 영화 패밀리의 '추억애' 그리고 2010년대로 넓히면 드라마 신사의 품격의 '아름다운 아픔' 등등.[18]

솔로 1, 2집과 더블루 1,2집을 연속으로 성공시킨 후 1996년에는 본인이 주연을 맡고 배우 이경영(1960)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귀천도의 OST 겸 솔로 3집 타이틀이었던 귀천도애가 그 전 앨범들을 뛰어넘는 초대박을 터뜨리면서[19]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싹쓸이할 때 귀천도애가 일본 노래를 표절한 걸로[20][21] 판정되어 가요톱텐에서 사과 방송을 한 다음 1위 후보에서 자진 하차하고 가수 은퇴 선언을 하게 되었다.[22] 그래서 본인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던 드라마 <머나먼 나라> 의 OST 이자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후속곡 Endless Love 활동 역시 불미스럽게 접게 되었다.

그렇게 약 2년간 가수로서는 활동을 하지 않다가 미련이 많이 남았는지 착한 사랑 작곡가 김도형과 가수 신승훈, 가수 이소라 등 주위의 설득에 김민종의 대표곡으로 아직도 사랑받는 록발라드 명곡 착한 사랑의 작사를 직접하면서 2년만에 가요계에 복귀한다. 착한사랑은 1998년에 가요프로그램 1위를 수차례 기록하며 대히트를 기록하였고 김민종은 과거 인기 가수의 영광을 되찾는다. 그 뒤 발매하는 앨범마다 큰 인기를 끌고 가요프로그램 1위를 쓸어담으며 2000년대 초중반까지 90년대 대표 남자 인기 가수이자 록발라드의 대표 주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집 또다른 만남을 위해 / 투유, 2집 하늘 아래서, 3집 귀천도애 / Endless Love, 4집 착한 사랑 / 그래도 그대는 나의 영원한 사랑이야 / 세상끝에서의 시작, 5집 비원 / 순수, 6집  / 아름다운 아픔, 7집 You're My Life / 하얀 그리움, 8집 바보처럼 등의 여러 히트곡들을 남겼다.[23] 특유의 목을 쥐어짜는 창법과 열창할 때 미간이 찌푸려지는 표정, 무대에서 쓰러질 듯[24]한 모습은 많은 연예인들이 개인기로 따라했고 1970~1980년대생들이 노래방에서 김민종의 포즈를 많이 따라하며 노래를 불렀었다[25].

2005년 영화 종려나무숲의 OST '좋은 사람 만나요', 2008년 드라마 천하일색박정금의 OST '이별도 사랑이다' 등의 OST를 발매하였으나 정규앨범은 2003년 솔로 8집 이후로 더이상 발매를 하지 않고 있다[26]. 이렇게 최근 음반을 발매하지 않는 이유는 음악을 잘해낼 자신이 없고 잘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서 가요계에 나서기가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2012년에는 신사의 품격의 OST 를 발매하였는데 본인의 6집 후속곡이던 아름다운 아픔을 재녹음해서 수록하였고 이 노래가 최근 참여한 음악 활동이 되겠다[27].

수많은 1위를 하고 숱한 히트곡을 남긴 레전드 남자 솔로 중의 한명이지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에게는 가수 김민종의 모습이 생소한데[28], 2003년 솔로 8집 바보처럼 활동 이후로는 배우에만 전념하여 가수로서의 모습을 TV나 공연 등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전 출생 세대들에게는 학창시절 최고의 인기 가수 중 한명이었고 특히 노래방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어가던 1990년대 중후반에 김민종의 히트곡들은 2000년대 초반까지 남자들의 대표 애창곡들이었다. 특히 남심을 자극하는 음색과 본인이 직접 작사한 슬픈 가삿말들로 인해 남학생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29]

록발라드 가수치고는 노래의 난이도가 높거나 고음이 많은 편은 아니였고[30], 가창력 역시 아주 뛰어나진 않지만 본인의 음역대에 맞는 곡들을 김민종 특유의 간지[31] 와 애절한 감성으로 본인의 노래들을 잘 소화해내었다. 악을 쓰면서 목으로 노래를 부르고 전업 가수가 아니란 비판도 당대에 있었으나[32] 톱배우로서의 인기를 떠나서 가수로서 뛰어난 감정전달능력을 보여주어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할 수 있었다. 그러나 3집 귀천도애부터 목을 긁는 스크래치 창법[33] 으로 창법을 바꾸어서 음역대가 많이 가라앉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잦은 술담배로 인한 관리 실패로 본인의 히트곡들을 원키로 소화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목 상태가 악화되었다. 모창 프로그램 히든싱어 시즌 1때부터 섭외 1순위였던 가수 김민종이 지금까지도 출연하지 않는 이유 역시 계속 언급하듯이 김민종 본인이 목 관리에 실패하여 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2019년 현재 사실상 가수로서는 커리어를 중단한 상태라고 봄이 옳다. 다만 인터뷰나 방송에 나오면 여전히 음악적 갈증은 마음 속에 있다고 하고 라디오스타나 복면가왕 게스트로 나와서 가끔씩 본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언젠가는 앨범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히든 싱어4 보아편에 패널로 나왔을 때는 자기는 1라운드에서 떨어질거라며 히든 싱어 출연을 고사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는 김민종의 모창자를 꾸준히 모으고 있지만 시즌6이 될 동안 출연하지 않았다.

 

 

 

 

[4] 종교

불교의 상징이라 할 만한 '(만)'자 목걸이를 즐길 정도로, 연예계에서 꽤나 유명한 불교 신도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비구니인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친구들과 사찰을 자주 찾았고, 학창 시절 한때 절에서 학교를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시상식에서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는 수상소감을 밝혔고[34], 2012년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부처님의 자비로움에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본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친 만큼 그 감회가 남다른 듯 하다.

여담으로 개같은 날의 오후 영화에서도 '' 목걸이 매고 나왔다.

 

 

 

 

[5] 근황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그 인기가 다소 주춤하게 됐는데, 나이를 먹기 시작한 것도 있고, 앞서 언급했듯 영화에서의 지속적인 실패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가수로서의 활동을 접은 게 크다. 김정민 버금갈 만큼 목을 쥐어짜는 듯한 스크래치 창법을 구사했던만큼, 목에 부담이 많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톱가수로서의 모습을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새로운 90년대생 세대들에게는 보여주지 못했다. [35] 90년대 전성기 시절에도 대중들이 톱배우 김민종보다 톱가수 김민종의 모습을 더 친근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수로서의 모습을 더이상 보여주지 않게 되자 귀신같이 연기 커리어 역시 하락세를 걸었다. [36] 김민종처럼 연기력, 음악실력 모두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연마한 연예인은 지금도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음악적 역량을 꾸준히 쌓아가서 과거와 같이 활발히 활동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가수이며, 꾸준하게 활동을 하는 만큼, 팬들은 김민종이 다시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SM에서 인수한 여행사에 사외이사로 선임이 되어서 나름 SM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간부가 되었다.[37]

2015년 11월 부산 조직 폭력배 칠성파 간부 결혼식에 나와 손지창과 같이 진행을 맡았다. 이에 대한 취재에 둘 다 피해 다니기만 했다고.

2019년 현재 KBS 육아예능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 에 출연하여 미혼남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 11월 28일 정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하였다. 소장인 강용석과 방송 이후에 여러번 술자리를 가지면서 생긴 개인적인 인연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지난 10월 24일 모친상을 당했을때는 김세의 대표와 김용호 연예부장이 직접 조문을 와줬었다고 한다. 정치 유튜브 채널에 출연했지만 전혀 정치적인 얘기는 하지는 않았고 연예계 쪽 얘기와 최근 근황에 대해서만 말했다. 특히 가로세로연구소측이 빅히트를 비난했던것을 김세의 대표가 언급하자 가로세로연구소측이 그러면 안된다며 SM도 그렇고 빅히트도 그렇고 가로세로연구소가 유하게 나가야 한다며 조언이 섞인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2020년 11월 29일 SBS 미운 우리 새끼 에서 새로운 아들로 출연하였다.

 

 

 

 

[6] 여담

장동건과 관련된 꽤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김민종은 이른 시기에 스타가 되었는데 원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장동건이 맡은 배역은 김민종의 배역이었다. 그러나 김민종이 SBS <열정시대>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출연이 어렵게 되자, 이미지가 비슷한 탤런트를 찾다가 신인 장동건을 기용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장동건은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물론 워낙 출중한 외모이니만큼 이 드라마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떴었겠지만… 사실 장동건을 진짜 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는 따로 있었다.

김보성과 더불어 연예계의 대표적인 의리 캐릭터로, 앞뒤도 안 보고 의리 하나때문에 금전적, 물질적인 손해를 보고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한 듯 하다. 지인의 부탁으로 영화에 무보수로 출연한 적도 있었다고. 다만 김민종의 경우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다고 보는 게 옳을 듯.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연예인들은 이 감정이입하는 감성이 매우 발달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장국영처럼 연기자로도 가수로도 모두 성공을 거둔 사례를 찾아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는 부분. 연예인으로서는 축복받은 재능이나, 남의 말을 잘 믿고, 부탁을 쉽게 거절 못하기 때문에 고생 끝에 번 돈을 허무하게 날리는 경우가 유독 많은 연예인 직업군에서도 크게 손해를 보았던 사례인 듯.[41]

박중훈과의 인연이 좀 깬다. 1987년[42]에 박중훈이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라는 영화에 최재성과 같이 주연으로 나왔는데 김민종은 이 영화의 단역으로 데뷔했다.[43] 촬영장에서 박중훈이 날씨가 추운 관계로 김민종에게 자신의 차 열쇠를 주면서 시동만 켜 놓고 차 안에서 히터를 쬐라고 배려해 줬었는데 김민종은 이 차로 주행을 하다가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이 사고로 상대 차량의 수리비가 그 당시 기준으로 50만 원(지금으로 따지면 그 10배인 500만원이 넘는 돈이다.)이 나왔다. 이 때문에 박중훈은 김민종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하며 갈궜는데 이후 그것도 인연이라고 나중에 화해한 이후로는 둘이 친하게 지냈다. 참고로 박중훈은 영화에서 맡았던 코믹한 역할 이미지와 달리, 지금도 그랬지만 당시에도 화가 나면 가장 무서운 연예인이였다. 박중훈의 분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바이오맨항목이나 박중훈항목을 보면 된다.

의외로 심각한 방송사고를 일으킨 적이 있다. 한밤의 레전드 방송사고 사건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삼인조 홍보차 나온 한밤의 TV연예에서 사회자 유정현이 그가 맡은 깡패역의 극중 한장면을 한번 보여달라고 계속 요청하자 갑자기 멘탈이 붕괴했는지 아니면 욱했는지 생방송인데도 실제 쌍욕을 넣어야 이 씨박쉐끼야 잔소리하지 말고 돈 되는 거 있으면 다 내놔 거하게 대사를 친 뒤 자기도 놀라 '큰일 났다 방송사고다! 어쩌지? 시켜시니까 하긴 했는데...' 라고 한 흑역사 중 흑역사(...) 뇌를 해킹 당했나? 아니면 진정한 메소드. 저 당시로도 데뷔한지 10년이나 된지라 방송물 먹을만큼 먹은 사람인데도 저런 실수를 했단 것이다. 다만 당시 진행자 유정현도 과했던 것이 계속 강하게 해달라면서 김민종을 몰아 세웠다. 그래서 김민종도 순간 욱해서 욕을 섞어가며 연기했고 그와 동시에 유정현을 쏘아보며 시킨대로 했다 어쩔거냐는 반응이였다. 유정현 역시 시켜놓고 막상 방송사고를 터트리니 살짝 화나서 이악물고 그래 했다 이거지 이런 식으로 대꾸했다. 다소 격앙된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 함께 주연을 맡아 방송에도 함께 나온 이경영이 진행자와 김민종 모두 말을 더듬고 있을때 "제가 앞으로 김민종씨 언어순화 교육을 책임지고 살겠습니다"라고 유머러스하게 넘겨서 덜 욕먹었던 점이다.[44] 퓨어한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도 퓨어바보 한 듯. 유투브 등지에서 김민종 방송사고라고 쳐보자.

2013년 10월말 11월초 2주간에 걸쳐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초청되는 등 조금씩 극 이외의 매체에도 등장하면서 다시 주목 받는 중. 이날 방송을 보면 DSP미디어 이호연과 친해서, 과거 이호연과 핑클이랑 같이 일본에 놀러갔었다고 한다. 그때 성유리가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졌는데, 김민종이 와서 구해줬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가수 ' 김민종 ' 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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