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지식백과사전
[ 전단 ] - 해군 특수전전단 본문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전단 ' 해군 특수전전단 ' 에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불가능은 없다!(Nothing Is Impossible!)
대한민국 해군의 특수전전단은 해군작전사령부 직할 전단 중 하나로, 해군의 특수전부대다. 전단장은 해군 준장이 보임된다.[6]
모체인 해군 수중파괴대의 영문 약칭대로 통상 UDT(Underwater Demolition Team)라 부르기도 하며, UDT/SEAL(SEa, Air, Land)이라고도 칭한다. 부대창설 과정과 SEAL 임무확장 과정에서[7] 나타나듯 미 해군의 UDT와 SEAL을 모델로, 매년 시행되는 부대원들의 유학이나 연합훈련을 통해 영향 받으며 발전하고 있으며 국군 내에서 개방적이고 선진화 된 특수부대 중에서도 가장 손에 꼽는 부대다.[8][9]
조광현 예비역 대령 인터뷰
[2] UDT/SEAL
UDT/SEAL이라는 이름은 미 해군 NAVY SEAL의 모체인 UDT를 벤치마킹하여 창설한 부대에, 훗날 미 해군의 UDT가 발전하며 부여된 SEAL 임무를 덧 붙여 UDT/SEAL이 된 것이다. 이름답게 전천후 임무 수행이 가능하며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탐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호송, 특공대 철수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 뿐만 아니라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침투, 암살, 직접타격(DA), 대테러, 경호 등의 임무를 모두 수행 가능하다.
피랍선박 대응훈련을 수행하기 위해 패스트로프 강하 후 진입하고 있는 UDT/SEAL 대원들 |
[3] 편성
2019년 9월 10일 해군특수전전단 종합전술훈련장에서 훈련중인 해군 특수전전단 대원들 |
-
특수전전단
특수전전단의 본거지이자 각종 훈련시설을 갖추고 있는 진해에 주둔하며 훈련에 전념하는 1특전대대가 주력 부대이다. 그리고 동해 1함대의 3대대와 서해 2함대의 5대대는 함대기지 또는 각 함대가 관할하는 접적해역에서 벌어지는 긴급상황에 대비하는 부대이다. 이외에도 인천을 비롯하여 접적해역 모처 등에도 소수의 해군특전대원들이 파견근무하고 있다.
진해의 제1특전대대는 위의 작전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제1대대 소속 대원은 이 작전대들 중 하나에 소속되어 해당 임무를 전문적으로 훈련한다. 장기복무자의 경우 몇 년이 지나면 순환 근무로 소속 작전대를 옮기는 경우가 많아 최소한 2개 이상의 제대를 섭렵하기도 한다. EOD와 CT는 별도의 교육과정이 필요하며, 장기자 간부는 해당 제대에 속하지 않더라도 자원하여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도 있다. EOD 및 CT는 고도의 전문과정이라 제대에 속하는 특전병이라도 교육받지 못하고 간부만 받을 수 있으며 특전병이 배속된다 하더라도 이는 작전요원으로 배속된 것이 아니다.
폭발물처리임무(EOD)는 1968년 4월 22일 부여 되었다.[14] 임무 부여에 따른 사전작업으로 1966년 장교1명, 부사관2명이 미 해군 폭발물처리 교육과정에 보내졌으며 최종적으로 1968년 5월 1일에 폭발물처리대가 창설됨으로써 마무리 되었다. 한국군 자체 폭발물처리 교육과정은 백동일 예비역 대령이 UDU교육 수료 후 1976년 미 육군 폭발물처리 교육과정에 지원하여[15] 이수한 뒤 귀국하여 1977년 UDT/SEAL로 발령 받았다. 이때 한국 해군 자체 폭발물처리 교육과정 개설에 기틀을 닦았다고 주장했으나 UDT출신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8개월 가량 UDT에서 대기근무 했다고 한다. 1968년 창설된 것이 한국 해군 EOD이며 백동일대령 이전에도 수많은 미국 EOD교육 이수자들이 있었는데 이근 대위처럼 미 해군에서 새로운 교육과정을 이수 한 것도 아니고 여러 인원들이 이미 다녀온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1977년, 8개월간 근무한 백동일 대령이 해군 폭발물처리학교의 기반을 닦았다는 주장에 고개가 갸우뚱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며 분명 당시 UDT근무자들의 반론이 존재한다. 백동일 대령 본인도 예전에는 UDT출신이라고 외부적으로 밝히다가 특임자 보상이후 UDU라고 밝힌다. 내용에대해 말 많은 정보 50년사 책자 집필 실무자이기도 하다.백동일 예비역 대령 인터뷰
폭발물처리대[16]를 2017년에 확대개편하여 폭발물처리'대대'로 독립/승격시켜서 현재는 EOD는 대대급 부대이다.
2018년 9월 1일 5전단 55전대 예하의 SSU가 특수전전단의 해난구조전대로 편입되었다.
예전에는 해군 UDT/SEAL에서도 육군 특전사처럼 지역대라는 명칭을 썼지만 이후 작전대라는 명칭으로 바꿨다.
전쟁이 터지면 해군 특수전전단은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로 배속되고, 오키나와와 미국 본토에서 증원된 미국 특수부대들은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 예하로 배속된다. 그리고 이 대한민국 특수전사령부(육군 특전사 및 여기에 배속된 해군 특수전전단)와 주한미군 특수전사령부가 병합되어 연합 특수전사령부(Combined Unconventional Warfare Task Force: CUWTF)를 구성하여 한미 연합 특수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4] 역사
연도 |
연도 |
부대 명칭 |
|
해군 해변단 수중파괴대 |
해군 작전사령부 특수전여단 |
||
해군 특수공작대 |
해군 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
||
해군 제2전단 제25특수전전대 |
해군 작전사령부 특수전여단 |
||
해군 제5전단 제56특수전전대 |
해군 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
Going Gets Tough, UDT Men Get Going
아무리 힘들어도 UDT는 한다!
한국 UDT 생도 미국 유학을 보도한 미국 신문기사의 헤드라인
UDT 창설배경 |
6·25 사변을 거치면서 미군으로부터 전달된 특수작전부대 편성과운영은 그대로 해군특전부대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1952년 2월,미 정찰정보대(RIU·Reconnaissance Intelligence Unit)가 해체되면서 한국해군에 정찰정보대의 창설을 기획했다. 이에 한국 함대정보국(NID·Naval Intelligence District)은 1952년 11월, 미 해군특수전부대 UDT 양성과정인 B-6 과정에 김성권 중위를 유학시켰다. 당시 UDT 창설목적은 '요인암살 및 첩보수집' 이었다. 김중위에 이어 1953년과 1954년 미 해군 B-6과정에 유학한 11명으로 대한민국해군 UDT가 탄생됐다. 1955년 5월 25일 한국함대 B-6교육과정이 발족됐고 같은 해 11월 9일 제 1기 과정 26명을 수료시켜 대한민국해군 UDT가 창설됐다. [17]
1955년 미국 UDT교육과정 수료사진 |
해군 지휘부에서는 한국 UDT가 창설되기 전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시 미군의 전쟁수행 핵심전략인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적 해안정찰, 첩보획득, 해상정찰, 내륙기습폭파공작, 해안장애물 제거, 기뢰탐색 및 소해, 유격대 및 요인호송, 특공대 철수지원 및 수중파괴 임무를[18] 수행하며 큰 활약을 보인 미 해군 UDT를 모체로 하여 창설을 준비하였다. 이에 따라 미 해군 UDT의 선진 교육을 통한 작전개념 정립과 차기 국내에서 배출해야 될 UDT요원들의 교관 확보와 더불어 임무수행에 필요한 장비 획득이 우선시 되어 1954년과 1955년에 해군 내 국가관과 군인정신이 투철하고 체력이 우수한 대원을 공개 모집, 미 8군 주도의 영어시험을 거쳐 최종적으로 장교 3명과 사병 4명 등 총 7명을 최종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해군은 선발된 7명을 두 차례로 나누어 미 해군 UDT과정(B-6)에 유학을 보냈고 장인표 대위 등 7명 전원이 소정의 미 해군 UDT과정(B-6)을 수료하여 한국 해군 UDT가 탄생되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이들은 미 해군 UDT 교육과정에서 습득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UDT 창설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STU)에서 UDT 모집을 공고하였다. 지원 자격에 별다른 조건은 없었고, 신체 건강한 해군 장병이면 지원이 가능했다. 또한, 수료 후 특별대우와 미국 유학기회 보장, 파격적인 주ㆍ부식을 제공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전후 복구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라 해군 내에서는 보급품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고 식사 및 의복 지원도 여의치 않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해군에서 제시한 조건은 해군 내에 최대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모집공고 후 300여명의 사병들이 지원하여 지원자들은 팔굽혀펴기, 달리기 등 1차 체력검정을 실시하고 다음날 해안대 방파제 앞 해상에서 2차로 수영 및 잠영 테스트를 거쳐 최종 80명이 선발되었다.
UDT 창설 요원인 장인표 대위 등 33명 |
1955년 8월 5일 UDT 1기생이 입교했다. 해군의 최초 UDT 교육은 교육훈련에 필요한 각종 교재와 장비 등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체력단련과 수영위주로 제2전단 예하 함정교육대(항무) 주관으로 시작되었다. 비록 훈련에 필요한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지만 미 해군 UDT 교육과정과 유사한 내용으로 구성하여 체력, 지옥주 훈련(극기훈련), 구보, 수영, 잠수 등의 다양한 교육훈련을 13주간 실시하였고 특히 이때 실시한 잠수(Skin SCUBA) 교육은 국내 잠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어 한국 잠수 역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매일 계속되는 강한 훈련에 생도들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 해군 UDT 과정을 수료한 7명의 교관들은 UDT의 혼과 열정을 심어주기 위해 미 해군 UDT 과정보다 더 강한 훈련으로 교육하였고, 1955년 11월 9일 마침내 병조장 이만수 등 26명은 대한민국 UDT 1기로 배출되었다.
1955년 11월 9일 UDT 1기 수료식과 더불어 장인표[19] 대위를 초대 지휘관으로, 교관 7명과 UDT 1기생 26명 등 총 33명으로 해군 함대해변단 예하에 수중파괴대(UDT)를 창설했다. 원래는 해군 현역 장병만을 대상으로 모집하였으나 1988년 이후부터는 민간 모병을 병행하였고, 현재는 민간 모병을 통한 입대자가 대부분이다.
[5] 특징
기본적인 팀의 편제는 밑과 같다. 대원 개개인은 작전/정보, 화기, 폭파, 통신 중 1개 이상의 주특기를 지니며, 각 팀은 7인 1개조로 구성된다.
-
PT(Point Man) : 척후
-
PL(Platoon Leader) : 팀장
-
RM(Radio Man) : 통신수 - 통신장비 휴대.
-
AW(Automatic Weapon) : 자동화기 사수 - 기관총 휴대.
-
GR(Grenadier) : 투척수 - 유탄발사기 휴대.
-
APL(Assistant Platoon Leader) : 부팀장.
-
RS(Rear Security) : 후방경계.
또한 그 유명한 개구리 뜀뛰기식 퇴출을 할 경우에도 위와 같은 작전 대열 순으로 을 한다. 미 해군 네이비 씰에서는 '필링' 퇴출 전술이라고 부른다. [24] 미 해군 SEAL은 미국의 지속적인 전쟁 속에서 피를 흘려가며 전술을 개선해 나가고 있으며 이와 같은 올드한 전술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 미 해군 SEAL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고 있는 한국 UDT/SEAL 또한 대외적 시범 및 팀전술 입문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또한 UDT/SEAL이라고 해서 꼭 네이비 씰의 전술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상황별 작전 절차에 따라선 영국 SAS의 전술도 도입하여 사용한다. UDT 대원에게 너희 SAS에서 파생된 전술도 사용한다며?라고 물어봐도 그 대원은 잘 모를 수 있다. 복무할 당시 도입된 전술이라면 유래까지 알 수 있지만, 수많은 전술을 익힐 때 어느 부대에서 파생된 전술인지까지 전부 교육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술이 지금까지 사용되는지 알 수 없다. 전술은 상황이나 운용장비와 같은 부분에서도 영향을 받으며 특히 실전을 통해, 실전이 없다면 실전을 겪은 부대와 교류를 통해 계속 접목, 도태, 변형하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전술의 노출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동맹이나 우방국이라 할 지라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부분은 연합훈련을 하며 순간적으로 캐치하거나 부대원 간 개인적 인맥, 군 수뇌부의 정치외교적인 노력이 총동원된다. [25]심지어 이런 이유로 UDT/SEAL의 본진인 진해 소재 부대는 국군 및 경찰, 해경과 합동훈련을 꺼리고 합동훈련을 하더라도 전술 노출을 최소화한다. 이 때문에 UDT 출신 해경 특공대원이 훈련 협조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한다.
|
UDT 대원들의 퇴출 시범 |
1. 적들을 향해 일렬횡대로 늘어서고, 한쪽은 팀장 다른 쪽은 부팀장이 지휘하며 팀장과 부팀장 팀이 서로 '엄호사격→퇴출'을 반복한다. 다른 팀원들은 퇴출하는 동안 화력을 유지해준다. 퇴출하면서 대열을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 |
한국군 중에서 가장 서구화된 부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도 그럴것이 접적해역의 윗동네 아저씨들과 아덴만의 소말리아 해적등을 상대하면서 어찌되었든 실제 임무 상황을 계속 겪는 부대이고 국내, 국외 파병, 파견해역에서 미 해군 SEAL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해군 특수부대들과 수시로 비교가 되기 때문에 장비, 전술등이 동급으로 상향 평준화 된 경향이 있다. 실제로 아덴만 파병 이전 UDT 장비를 보면 광학장비 없는 K-1소총으로 무장하고 동시기 특전사와 비슷하거나 살짝 열악한 장비들을 보유하였으나, 그 전후로 급격히 장비가 바뀌어 무장은 HK416계열로 바뀌고 군복도 멀티캠 계열로 바뀌었다. 특히 미 해군 SEAL처럼 SOP[26]를 팀 단위로 적용하고 거기 맞춰 장비를 착용한다는 개념이 이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 UDT/SEAL과 연합훈련을 해본 미 해군 SEAL 간부가 훈련 후 소감으로 "한국 UDT/SEAL 대원들은 훈련 중에도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등 위계질서에 너무 집착하고 융통성이 부족한 게 아쉬웠다."라는 평을 내린 적이 있으나 위의 사례도 꽤 옛날의 것이고, 적어도 10여 년 전부터는 선배 쏘고 웃지만 않으면 상관없었다. 현재에도 미 네이비 씰을 주로 하여 그린베레, 데브그루와 같은 이들과 엄청난 규모·횟수의 교류를 하고 있고 매년 잡힌 수많은 일정의 국내·해외 훈련, 파병 및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장비의 경우 국군 내에서 독보적인 수준이고[27], 전문성에선 707과 우열을 다투는 수준으로 평가받는다.[28] 미 네이비씰로부터 수많은 노하우를 개방적인 태도로 받아들인 끝에, 훈련 사후 강평 시 네이비씰의 일방적 교육이 아닌 상호 논의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단 ' 해군 특수전전단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