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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 - 손석희 본문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JTBC 대표이사인 ' 손석희 ' 에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현 JTBC 대표이사 사장.
前 MBC 아나운서국 국장 및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13년 5월 13일 JTBC에 입사한 후 JTBC 뉴스룸 메인 앵커 겸 JTBC의 보도, 시사, 교양 담당 사장을 역임했으며, 2018년 11월 20일부로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2] 어릴떄부터 학창시절까지
1956년, 서울토박이 집안의 2남 1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으며, 밑으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6.25 전쟁 참전으로 인해 무공훈장을 2개나 받은 경력이 있다. 손석희가 6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전역하여 여러 사업을 했으나 여러차례 실패를 거듭했고, 때문에 손석희 가족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손석희는 취직하기 전까지 30차례나 이사를 다녔고, 집이 없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손석희 아버지가 양수기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집안에 있던 돈을 다 털고 사들여 놓은 걸 경기도 연천군 전곡 어딘가에 풀어놓았다가 큰물이 져 몽땅 떠내려가 버렸다. 손석희는 "이후 우리 식구들의 사건은 그 사건처럼 극적인 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중구 필동의 양철담장집에 세를 들어 살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상당히 고집이 세고 터프했다고 한다. 국민학교 2학년의 성적표에 '이 학생은 고집이 똥고집' 이라고 적혔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근처 퇴계로 고아원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는데 딱히 비슷하게 어려운 처지여서가 아닌 누구 하나 특별히 잘 살거나 못 사는 거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그러다 3학년 때 부임한 담임교사가 도시락 반찬을 싸오지 않고 아이들의 반찬을 빼앗아 먹더니, 한술 더 떠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둘러보고 "같이 먹자"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곧 학급은 선생님 책상에 늘 불려가는 아이들, 가끔 불려 나가는 아이들, 전혀 불려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었고, 당연히 손석희는 마지막이었다. 본인은 그때 비로소 가난을 알았다고 한다.
국민학생 시절 심한 도벽이 있었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이 도벽의 대상이었고, 무엇이든 훔치지 않고는 못 배겼다고 한다. 어머니의 지갑에서 시작해서 이웃집의 물건들을 훔쳤다고 한다. 어머니에게 수 차례 회초리를 맞아도 소용없었고, 어머니가 울면서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아버지에게 피멍이 들도록 매질을 당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손석희의 자전격 수필집 <풀종다리의 노래>에 나와 있다.
[3] MBC 입사
1984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MBC에 입사하기 전에는 KBS와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으나 금방 그만뒀다.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하면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던 듯하다. 친구들이 방송반 경력도 있고 어울리니 시험 보라고 권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아나운서가 된 이후로 MBC에서 빠른 속도로 아나운서로 입지를 다져서 입사 2년만에 마감뉴스와 아침 뉴스의 진행을 맡을 정도였으나 손석희 본인은 기자를 하고 싶어해 회사에 여러 차례 요청한 끝에 1986년 보도국으로 발령나 기자가 되었다. 기자 시절 서울시청 출입 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기자 생활 동안 특종을 전혀 잡지 못하여 기자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데 실패했고, 결국 1년 만에 아나운서로 재발령되었다고 한다.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하여 1987년 2월에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되었다.
다만 아나운서 방송초기 당시에는 MBC가 명목상으로 공영방송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관영방송이었던 관계로 당연히땡전뉴스를 진행했다. 주말 뉴스를 맡았기 때문에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보도를 할 일은 많지 않았지만, 주말에 대통령이 불시에 전방부대를 시찰한 것이나, 국경일 경축사 등의 뉴스를 땡전뉴스 형식으로 보도했다. 평화의 댐 모금방송도 손석희가 MC를 맡아 진행했다. 손석희 본인은 "어용방송을 진행했을 때 자괴감이 들었다"고 하며, 훗날 방송민주화 운동 및 파업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거나 손석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6.10 항쟁,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13대 대선, 13대 총선, 1988 서울올림픽, 5공 청문회가 펼쳐지는 격동의 시기 동안 1989년 10월까지 주말 MBC 뉴스데스크와 MBC 뉴스센터 앵커직을 맡는다. 이때가 1988 서울올림픽과도 겹쳤던 시기이기 때문에 20년 뉴스 보기를 통해 당시 올림픽이 진행되었을 때 날짜를 잘 검색해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손석희 앵커가 올림픽 특집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하간 1989년까지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맡았다가 1990년에는 저녁 뉴스 앵커를 맡게 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아침 뉴스 진행을 맡게 된다.(MBC 뉴스와이드, MBC 뉴스투데이, MBC 아침 뉴스 2000)
[4] 기자 시절 주요 보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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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 집단 자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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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탈주사건 진압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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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귀에 도청장치 방송사고 당시 보도내용
이 외에도 앵커 시절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공판을 모두 중계한 기록을 갖고 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방송 때 브리지트 바르도와 인터뷰한 전력이 있으나, 시선집중 7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인터뷰 대상을 다그친 사례로 들었다. 말이 안 통하는 대상이라고.
[5] MBC 노동조합 활동
MBC 노동조합 파업 당시의 사진이다. 사실, 손석희의 사진을 찾아보면 웃는 사진이 별로 없긴 하다. 위 사진도 네이버에서 '해맑은 손석희' 로 검색하면 나오는 유일한 사진이기도 하다. 참고로 워낙 젊어보여서 실감하기 힘들지만, 이 당시 만 36세였다.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는 체포된 이후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라는 말을 남겨서 눈길을 끌었다.
당시 12월 대선을 앞두고 봄부터 여당에게 비판적인 PD수첩과 뉴스보도를 금지하고 노조간부들을 지방 한직으로 발령내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자, 즉시 노조가 반발을 하면서 파업이 일어났다. 결국 9월부터 52일 간 진행된 파업은 전투경찰의 투입으로 끝났다. 그는 이 때 주동자로 몰려 구속, 동료 몇 명과 함께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정확히 말하면 당시 손석희는 노조 간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동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파업 참가자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본보기로 찍힌 사례다.
여담으로 이 때 이미 미남으로 유명해서 관련 보도 중에는 "누가 이처럼 선하게 생긴 미청년을 파업 현장으로 내몰았냐?"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당시 여성 앵커의 상징이었던 백지연도 다른 노조 간부들과 비슷한 수준의 중징계를 받았다.
훗날, 김주하 앵커는 2011년 출간한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에서 손석희 앵커와 일화를 공개했는데 "존경해 마지않던 손석희 앵커와 파트너가 된다니… 공정방송을 위해 저항하다 수갑을 찬 채 차에 오르고,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흑백사진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분과 뉴스를 한다니!"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여기서 수갑을 찼던 것은 역시 노동조합 파업 사건 때문이었다.
[6] JTBC 행
2013년 5월 9일, 종합편성채널 JTBC로 옮긴다는 보도가 나왔다. JTBC에서 보도 담당사장직을 맡기로 했다고. 5월 10일 시선집중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마지막 인사말을 전하면서 목소리가 좀 잠기고 억양도 살짝 떨리는 등, 심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로 MBC내에서 보낸 13년의 기나긴 여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팬들은 손석희의 말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도 지금처럼 정론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면서 성원을 보냈는데 가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니라 항상 중립주의였던 그가 종편의 간부로 간다는 게 꺼림직하단 의견도 있었고 손석희의 매형이 JTBC의 대 PD인 주철환인지라 매형의 영향력으로 낙하산 인사로 들어간게 아닌가하는 기사도 나왔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후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선 중앙일보와는 논조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으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봐도 원래 성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의사표명을 드러내는데, JTBC 자체도 원래 삼성만 빼면 은근히 정치적 중립에 가까웠던 만큼 손석희 또한 삼성을 비판하는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으나 들어가고 얼마 되지도 않아 대놓고 비판했다.
이 때 첫 출근에 관한 웃긴 일화가 있는데, JTBC에서 지정한 손석희의 출근시간은 10시였던 만큼 기자들도 10시에 사진을 찍을수 있도록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손석희는 이전 MBC시절처럼 이미 1시간이나 전인 9시에 출근한 뒤였기 때문에 뒤늦게 다시 내려와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손석희의 JTBC행 이후로 부터 2018년 말, JTBC라는 방송사의 대표이사로 올라서기 까지의 직책은 보도담당 사장이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초기에는 인사권은 없었고 다만 인사 담당자에게 의견을 내는 수준이었다 한다. 이따금씩 뉴스룸 대신 진행되는 특집토론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는 보도 부문의 편성에 대해서도 별도의 권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7] 일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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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선정한 영향력 1위 언론인에 15년 연속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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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언론인 영향력·신뢰도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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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대학생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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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많이 맡아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방송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 방송에서 최초로 아나운서와 기자를 겸직한 인물이다.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한때 보도국에서 기자로도 활동했고 이후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하여 아나운서 국장까지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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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MBC 연기대상에서 시선집중으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상자는 예전에 자신이 뉴스 멘트를 쓰는 법을 알려주고 입사 초기 기자 시절 뉴스 진행 때 울려버리기도 했던 김주하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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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 떠도는 카더라에 따르면 손석희가 국민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아나운서에서 뉴스 앵커로 발탁되고 아나운서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로 전직하여 뉴스를 담당하게 된 것이 이순자 여사 또는 당시 군부 핵심 관계자의 눈에 들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꽤 오래된 이야기이며 손석희 본인도 한 강연에서 이러한 소문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소문은 소문일 뿐 진실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JTBC 대표이사인 ' 손석희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