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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 - 프랑스

돌아온 지식백과사전 2020. 3. 9. 00:42

안녕하세요. 지식백과사전입니다. 오늘은 나라 중 ' 프랑스 ' 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개요

프랑스 공화국(République Française), 약칭 프랑스(Française)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맞닿은 유럽의 본토와 대양에 산재한 여러 해외 영토로 구성된 국가이다.

 

영국, 독일, 러시아와 함께 유럽의 대표적인 강대국 중 하나며, 유럽에서 3위 이내 순위권에 들어가는 경제 강국이다. 경제 순위는 영국과 매년 엎치락 뒤치락 한다. GDP로만 본다면 프랑스가 우세했으나 2017년부터 영국의 GDP가 프랑스를 추월했다. 비옥하고 광활한 영토에서 비롯된 생산력과 인구를 바탕으로 프랑크 왕국 때는 동로마 제국과 더불어 유럽의 패권을 다투었고 분열 이후 프랑스 왕국 시절에는 신성 로마 제국과 더불어 서유럽의 패권을 다투었고, 영국이 18세기부터 대두한 후에는 영국과 세계 각지에서 겨루며 패권을 다투었다. 상당히 단순하게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만큼 강력했던 것은 맞다고 할 수 있다.

유럽, 대서양, 북해, 지중해의 중심에 있고, 인접한 주변 국가들이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 등 유럽의 네임드 국가들이 많다 보니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전파했기 때문에 문화적 영향력이 크다. 프랑스가 제국주의 정책을 취했던 19세기에는 프랑스 문화가 전세계로 뻗어나갔기 때문에 20세기 이전 세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 미국과 함께 시민 혁명의 발상지이자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고대부터 자리잡고 있던 갈리아족(켈트족), 카이사르를 필두로 하여 로마 제국에서 올라온 라틴족, 나중에 대규모로 이주해 온 게르만족이 섞여서 이뤄졌으며,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킹 지파인 노르만족도 노르망디에 정착하면서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프랑스인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이민족들이 계속 영역으로 들어왔고, 19세기부터는 서유럽,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로부터 이민도 엄청나게 받았기 때문에 다민족 국가다. 과거에도 이민을 오거나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세계 대전이 모두 끝나고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았을 시기에 온 것이다.

UN 상임이사국이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다. 국제통화기금 투표권은 세계 5위, 금보유고는 세계 4위다. 국방비는 세계 5위, 무기 수출은 세계 4위고 핵무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기술 보유국이다.

 

 

 

[2] 상징

프랑스의 상징으로 갈리아의 닭(Coq gaulois)으로 불리는 국조(國鳥)인 수탉이 있다. 라틴어로 Gallus는 수탉, Galus는 갈리아를 의미해서 갈리아를 통치했던 로마 지배층이 갈리아를 닭으로 지칭하는 습관이 있었다.

마리안(Marianne)도 프랑스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여신, 프랑스 유로 동전의 여자, 프랑스 우표의 여자가 바로 마리안이다. 프랑스 정부 홈페이지에도 마리안이 들어가 있다.

프랑스 축구 협회의 상징이 수탉이고 정부의 비공식 마스코트는 마리안이다. 다만 수탉과 마리안은 모두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상징은 아니다.

프랑스 혁명 시기의 구호로 알려진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가 국가를 상징하는 표어로 쓰이고 있다. 프랑스어 발음으로 리베르테[libɛʁte], 에갈리테[eɡalite], 프라테르니테[fʁatɛʁnite]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자유, 평등, 박애로 번역되지만 Fraternité를 형제애나 연대, 우애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이 아닌 혁명 동지들에 대한 우애의 표현이었다. Fraternité를 박애로 번역한 것은 일본인데, 다나자와 나오코(棚沢 直子)에 따르면 메이지 유신 시절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 계층의 자선 활동의 영향으로 Fraternité라는 말에 박애, 자선 등의 요소가 추가되어 있었기 때문에 Fraternité를 박애로 번역했다.

프랑스 혁명 시기의 구호이기는 하나 특별히 다른 구호에 비해 많이 쓰이지는 않았다. 이것이 국가 표어로 자리잡은 것은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이다.

 

 

 

[3] 국호

프랑스의 국명 France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의 국가 프랑크 왕국에서 기원했다. 프랑크족의 땅이라는 뜻의 라틴어 Francia에서 유래했으며, 많은 유럽 언어에서도 Francia를 변형한 말을 쓴다. 이것까지는 확실한데 Francia라는 말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프랑크족이 주로 사용하던 도끼인 프랑시스카를 이르는 것으로 보이는 옛 게르만어인 frankon에서 유래해서 프랑크 족이란 이름이 붙었고 프랑스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프랑크족이 사용하였다 하여 프랑시스카라고 불렀다는 견해도 있다. 프랑시스카가 라틴어의 형태를 한 단어라는 점에서 프랑크인들이 자신들의 무기에 라틴어 이름을 지어줄 이유가 없으니, 로마인들이 그 무기를 사용하는 종족의 이름을 따서 무기에 라틴어 이름를 붙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프랑시스카에서 프랑크가 나왔다기보다는 프랑크에서 프랑시스카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경우 프랑크인들은 이 무기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것이다. 아무튼 이 어원은 프랑스 안에서도 꽤 유명해서 비시 프랑스가 자국의 대통령기로 쓰기도 했다.

고대 게르만어에서 frank가 자유(free)를 뜻하는 것에 착안해 로마에 정복되지 않았던 자유인이라는 뜻으로 프랑크족에 frank 혹은 franc라는 이름을 붙였고 여기서 프랑스라는 국명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

그리스어로는 갈리아(Γαλλία)라 한다. 로마 제국의 지배 이전에 이 곳에 살고 있었던 켈트 민족인 갈리아족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한국어 명칭인 프랑스는 그냥 France를 따온 말이며, 한자 음차는 일본어 불란서(佛蘭西)와 중국어 법란서(法蘭西)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본의 영향으로 프랑스의 한자 음차로 불란서를 사용하며, 프랑스를 줄여 부를 때도 프나 불(佛)을 사용한다. 일본에서는 불란서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불란서라는 표현이 나름 쓰인다. 중국어권에서는 법(法)은 프랑스를 줄여부르는 말로 사용하며, 프랑스를 법국(法国)이라 칭한다.

 

 

 

[4] 국기

삼색기(Le drapeau tricolore)라고도 불리며 파랑-하양-빨강의 3색으로 이루어졌다. 3색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후에 덧붙인 설정이고 원래 파리의 시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파리의 국기는 파랑-빨강의 두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었던 파리 시민들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 당시 파리 시민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상징하는 파랑, 빨강, 하양이 그려진 장식인 삼색 코케이드(Cocarde tricolore)를 두르고 습격에 참여했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 성공하고 혁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파랑과 빨강은 혁명을 대표하는 색이 되었는데 당시 혁명을 이끌던 인물들 중 한 명인 라파예트가 혁명 프랑스의 새 국기로 혁명을 대표하는 색인 파랑과 빨강을 사용하고, 이미 사용되고 있는 파랑-빨강의 파리 시기와 구별되도록 가운데에 하양을 집어넣은 파랑-하양-빨강의 삼색기를 제안한 것이 삼색기의 시초다. 가운데의 하양은 앙시앵 레짐을 대표하는 부르봉 왕조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였으므로 파리 시민에 의해 포위된 왕을 상징하기도 한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직후인 1789년 7월 27일 라파예트가 제안한 파랑-하양-빨강의 삼색이 국가 방위대의 군복색으로 지정되면서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고 1790년 프랑스 의회가 삼색기를 국기로 지정하면서 프랑스의 국기는 삼색기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파랑과 빨강이 지금의 위치와는 정반대인 빨강-하양-파랑 순이었는데 이게 지금의 형태로 바뀌게 된 것은 1794년 2월 15일이다. 프랑스 해군은 하양 바탕에다 왼쪽 위에 삼색기를 그린 형태의 기를 해군기로 쓰고 있었는데 공화 정부가 하양은 왕정을 대변하는 색이라면서 해군기에서 하양 바탕을 빼고 삼색기만을 쓸 것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 삼색기를 선박의 꼭대기에 달았을 때 파란색이 바깥쪽에 있어서 멀리서 보면 파란색이 하늘이나 바다의 색과 비슷하여 잘 인식되지 않고 빨간색과 하얀색만 보였기 때문에 어느 국가인지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겼고 공화 정부는 이것을 빨강과 파랑의 위치를 서로 바꿔 버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파랑-하양-빨강의 삼색기를 고안한 사람은 테니스 코트의 서약,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등으로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다.

이 삼색 형태의 국기는 유럽 국가와 일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국기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자유 프랑스와 비시 정부의 프랑스가 하양 중앙에 각각 국토를 수복하는 로렌 십자와 전통적인 십자가가 있는 7개의 노란 오각별 무늬를 집어넣기도 하였다. 프랑스 영화인 삼색은 프랑스 국기의 3색을 본따 자유, 평등, 박애라는 색깔별 시리즈를 내놓기도 하였다. 프랑스와 관련된 것은 대부분 이 삼색기가 들어가기도 한다.

 

 

 

[5] 언어

공용어는 프랑스어다. 오랫동안 유럽의 강대국이었고 다른 유럽 국가와 전 세계에 프랑스 문화를 전파해서 19세기까지 프랑스어는 유럽에서 공용어 수준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현재도 영어보다는 아니지만 아직까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언어다. 프랑스어를 쓰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프랑코포니도 결성되어 있다. 유럽연합의 공용어 중 하나로도 지정되어 있다.

유럽은 대체로 국가 공용어와는 다른 지방 언어가 강고하게 존속하고 있는 국가가 많은데,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이후 파리의 방언을 표준화한 표준 프랑스어를 전국에서 교육하고 지방 언어를 탄압해왔다. 지금도 표준 프랑스어와 지방 언어 사이에서 갈등이 있다.


제1외국어는 영어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접근하기 쉬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배우는 인구도 상당하고 이민자들도 늘어나서 쓰이는 언어가 다양하다.

프랑스는 아랍계 주민들이 많아서 아랍어 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만, 극히 일부 학교에서 아랍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랍어를 배우지 못해 모스크의 부속 사립 학교에서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자 프랑스는 정규 과정에 아랍어 과정을 실시하려고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프랑스는 코르시카어, 노르만어, 브르타뉴어, 알자스어, 바스크어, 카탈루냐어 등 소수 언어들도 쓰고 있다.

 

 

 

[6] 교통

독일과 함께 유럽 최대의 철도 강국이다. SNCF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철도 회사로, 전국에 고속 철도망을 깔아서 국내선 항공편과 장거리 버스 교통을 거의 대체한 곳이며, TGV는 많은 철도의 모델이다.

프랑스는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운하가 있다. 그러나 완성되고 보니 그다지 빠르지도 않고 운하의 깊이가 깊지 않아 항해할 수 있는 배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어서, 화물 운송의 역할은 철도 건설에 밀려났다. 그래도 풍광이 아름답고 만들어진지 수백년이 지나 주변 환경에 녹아든 덕에 레저나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고 요트도 임대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민간 항공사로 스카이팀 창립 멤버인 에어 프랑스가 있다. 이외에도 세계 전역에 아직도 남아 있는 프랑스의 영토인 섬들을 연결하는 항공사도 많다.

 

 

 

[7] 종교

프랑스는 1905년 이래로 의식의 자유를 의미하는 라이시테(Laïcité)를 사상적, 정치적 이념으로 삼아서 국교가 없으며, 철저한 수준을 넘어 강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정교분리를 추구하는 세속 국가다. 독일이나 미국 등의 일반적인 서방 국가의 정교분리는 국가가 특정 교단을 편들어주지 않는 개념인데, 프랑스의 정교분리는 공적인 영역에서 종교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개념이다. 독일에서는 기민련 등의 종교 정당이 원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가톨릭의 전통이 깊어, 지금도 약 48%의 인구가 가톨릭 신자다.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가 된 것은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 1세가 496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성직자들과 기독교 공동체의 지지를 받아 프랑크 왕국을 탄생시켰던 것이 시작이다. 당시 게르만 족에는 아리우스파 이단이 퍼져있었기에 프랑크는 게르만의 가톨릭 전파의 선봉장을 맡게 되었다.

프랑스의 역대 왕조에게 가톨릭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종교뿐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이뤄왔다. 특히 교육과 행정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성왕 루이 9세, 성녀 잔 다르크로도 유명하다. 부르봉 왕조 시절까지 프랑스 왕국은 가톨릭 신앙을 전제했고, 프랑크 왕국이 가톨릭에 기반해 국가가 건설된만큼 그 후계를 자처하는 프랑스 왕국은 언제나 샤를마뉴의 왕국일 것을 요구받았다.

 

 

지금까지 나라 ' 프랑스 ' 에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긴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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